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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 등고유희_登高遊戲 <8>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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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라도 할라치면 퇴근길이 금방 캄캄해지는 가을이 왔다. 한여름엔 더워서 자전거를 탈 수 없더니만 그새 어두워서 탈 수 없는 계절이다. 어두울 때는 가끔 하는 자동차 운전도 무섭다. 얼마 전 차가 생겨 조심조심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시골살이에 자가용이 없으니 불편해서 엄마 차를 가져왔다. 잠깐 빌려 쓴다 했지만 생신날 차 값인 셈 치시라고 봉투를 드렸으니 계속 타게 될 것이다.

 

해가 점점 일찍 진다. 낮과 밤이 같은 날은 추분이라고 배웠었지. 다음에 뭐가 오나 궁금해져서 24절기를 찾아봤다. 도시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 때는 입추다 입동이다 하는 말만 흘려들었지 몸으로 자연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다. 지하철과 사무실은 연중 크게 다를 바 없이 온도가 일정하다. 오히려 여름엔 에어컨 때문에 춥고 겨울엔 히터 때문에 덥다. 완주에서는 해 뜰 때 눈 뜨고 창을 활짝 열어 집 앞 논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니 계절의 변화가 확실히 느껴진다. 게다가 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뚝방길과 마을길을 지나 출근한다. 날씨 변화에 민감해졌다.

 

구만리 만경강변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논은 누렇게 물들어 간다. 곧 국화가 필 것이다. 이제 새벽엔 추워서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 없다. 나는 농사를 짓지 않지만 찬 서리를 맡기 전에 수확을 서둘러야 한단다. 고양이 손도 빌리고 불 떼던 부지깽이도 아쉬울 정도로 바빠진다. 일교차가 심해져서 안개가 많이 끼고 하루가 달리 추워지기 시작하는 시기, 절기상으로는 한로寒露. 절기를 들여다볼수록 놀랍고 대단하다. 선조들의 지혜니 역사와 전통이니 습관처럼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자연의 변화가 고맙고 두려운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알아차린 결과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고맙습니다. 조상님.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차량 점검을 받아야하니 입동에 맞춰 가야겠다.

 

옛사람들이 때맞추어 기념하는 명절, 세시풍속도 다 삶에서 나왔을 테지. 한로는 108일이고 중양절(重陽節)인 음력 99일과 비슷한 시기다. 올 중양절은 109일이다. 이때가 지나면 여름새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고 겨울새 기러기가 온단다. 뱀이 돌에 입을 닦고 땅속으로 들어가고 모기도 들어간다고 하니 밤에 모기 때문에 자다 깰 일은 없겠다.

 

중양절은 양의 숫자인 9가 두 번 겹치는 날이다.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3이 겹치는 삼월 삼짓날, 5월 단오, 7월 칠석까지 홀수가 겹치는 날을 복이 들어오는 날이라고 조상님들은 좋아들 하셨다. 중양절에는 수유 열매를 담은 주머니를 차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는 등고登高 풍습이 있었다. 열매를 머리에 꽂으라고도 하고 배낭에 담으라는 데도 있는데 어쨌뜬 몸에 지니라는 뜻이겠지. 빨간 수유 열매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으셨단다. 귀여우셔라, 조상님들. 그렇게해서 재난을 피했다는 중국 전설을 따른 것이다. 어쨌든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나 국화차를 마시고 시를 짓고 놀았단다. 서울 사람들도 남산이나 북악에 올라 맛있는 음식 먹고 재미있게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수유 열매가 뭔지 궁금하니 또 찾아보자. 수유 나무는 쉬나무라고도 하는데 불 밝힐 때 쓰는 기름을 얻기 쉬워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집근처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꽃은 여름에 피는데 무더기로 많이 피고 한 달 넘게 피면서 꿀도 많다. 영어로는 무려 beebee tree(벌꿀나무). 아이고 귀여워라. 조선 시대 문헌에는 쉬나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재앙의 기운을 물리치고 첫 추위를 막아달라 빌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엄청 고마운 나무잖아. 흔하게 보는 나무라는데 아는 게 없어 지나쳐도 모를 판이다. 수유 열매 배낭은 멨다치고 국화꽃이라도 머리에 꽂고 안수산으로 등고하여 먹고 노래하고 놀아야겠다.

 

* 글쓴이 바닥(badac) 이보현은 새내기 귀촌인이자 완주의 직장인으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줍거나 얻어) 쓰는 자급생활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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