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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 힘겨운 여름이 지나고 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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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샘골 논두렁 풀베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이로써 올해 두 번째 논둑치기가 모두 끝났다. 홀가분하겠다고? 글쎄다.



해마다 논둑치기를 해오고 있지만 이 짓을 꼭 해야 하는지는 흔쾌하지가 않다. 물론 좋은 점이 없지는 않다. 논두렁에 풀이 우거지면 보기에 어수선할 뿐 아니라 지나다니기가 몹시 불편하다. 또한 바로 옆의 벼포기를 덮어버려 끝내 고사시키고 만다. 이런 까닭에 논두렁이 우거진 농사꾼은 게으르다는 입방아에 오르거나 지청구를 들어왔던 거다.



반면 논둑 풀을 베어버리면 이로운 곤충이나 벌레가 깃들어 살 곳이 사라져 손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실은 힘들게 베어내도 어차피 풀은 다시 우거지는데다 들인 품만큼 ‘값어치’가 있느냐는 셈법이 흔쾌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되겠다.



그래도 ‘게으른 놈’으로 찍혀 눈총받기는 억울하고, 딱히 달리 할 일도 없는 시기라 울며 겨자 먹기로 한 해 세 차례씩이나 이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모내기 전에 한 벌, 이 즈음에 두 벌, 가을걷이 전에 세 벌이다.



그런데 이 번에는 유달리 논둑치기가 힘에 겹고, 오래 걸렸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꼬박 20일이나 걸렸음을 알게 됐다. 보통은 일주일 남짓이면 끝날 일인데, 세 곱절이나 걸린 셈이다. 어인 노릇인가.


돌이켜보니 이런저런 일이 많이 겹쳤던 점도 있지만 예초기 문제가 컸다. 올해부터는 좀 더 확실한 사고예방을 위해 칼날부위에 안전장치를 달았다. 그 결과 안전도는 높아졌지만 작업봉이 무거워지고, 안전판에 풀줄기가 자주 걸리는 탓에 작업 속도는 줄고, 효율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엊그제는 고장난 안전판을 아예 떼어냈더니 작업성과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안전장치가 계륵이라는 것, ‘불편한 진실’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논둑치기 작업이 늘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날씨 탓이 가장 컸다. 가히 ‘미쳤다’고 해야 할 날씨,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도는 날이 무려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난생 처음 꼴이지 싶다. 논둑치기와 거의 겹치는 기간이다. 오전 9시만 넘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오후 7시가 가깝도록 열기가 식지 않으니 낮에는 엄두도 못 내고, 아침-저녁 한 두 시간을 쪼개는 것도 쉽지 않아 날짜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날씨가 미쳐버린 건 천재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인재라 해야겠다. 틈날 때마다 되풀이하는 얘기지만 인간의 탐욕과 편의추구가 불러온 재앙인 것이다. 고기를 향한 끝없는 욕망, 조금 더 편해보자고 아낌없이 태워버리는 석유. 하여 차오르는 온실가스를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자연의 ‘반사’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그것이 제 살 깎아먹기요, 제 발밑을 허무는 짓임을 깨닫고도 한 번 길들여진 ‘육탐’과 편리를 떨쳐내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미친 날씨에 고달픈 건 농사만이 아니다. 날씨만 아니었다면 이번 칼럼 주제는 ‘양력백중놀이’로 달라졌을 게 틀림없다. 지난해보다 더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게 다 미친 날씨 탓이다. 논배미투어? 34도나 되는 기온에 감히 엄두를 낼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해떨어진 뒤에도 33도나 되는데 아무리 ‘한여름밤 낭만 콘서트’란 그럴 듯한 놀자판이라도 몸이 움직여지겠나 이 말이다. 결국 열기는 뜨거웠지만 ‘일꾼들 스스로 자신의 노고를 위로하는’ 조촐한 잔치로 끝나고 말았던 것.



지금 이 순간에도 미친 날씨는 기온 35도, 체감온도 37도를 찍었다. 힘겨운 한여름이 지나고 있다. 이래저래 ‘바람 선선해지면’ 하자는 일이 자꾸만 늘어간다. 


 


/고산 어우리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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