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감성 민요 (20) 아길라의 <아낙> 너 태어났을 때 /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찼단다 / 우릴 보며 웃던 너의 눈 / 그 웃음이 세상의 전부였지 //....// 그러던 어느 날 / 넌 점점 멀어지고 / 우린 너의 등을 바라보며 / 말없이 울었단다 //....// 이제 와 너는 말하네 / 모든 게 후회된다고 / 하지만 상처 난 마음은 / 쉽게 낫지 않더구나 // 그래도 우리는 / 여기 그대로 있단다 / 돌아오렴 , 늦지 않았단다 / 우리 품은 항상 네 거야 얼마 전에 사망한 프레디 아길라 (Freddie Aguilar) 의 유명한 「 아낙 」 (“Anak”) 입니다 .
이 노래는 필리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이며 ,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시대의 명곡입니다 . ‘ 아낙 ’ 이란 타갈로그어로 자식을 뜻합니다 . 이 노래는 부모 자식 간의 기대와 방황 , 반성과 회한 , 사랑과 용서 등의 사연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
단순한 선율과 반복적인 구조 속에서도 이런 감정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인류 보편의 죄와 용서 , 상처와 회복을 그린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 1977 년 프레디 아기라는 24 세의 무명 가수였습니다 .
그는 방황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그때의 심정을 담아 단숨에 이 노래를 썼다고 합니다 . 이 노래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 온 가족의 희망이었던 자식이 성장하면서 점점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 결국 큰 상처를 주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
하지만 부모는 결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 ‘ 돌아온 탕아 ’ 를 기꺼이 용서하며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입니다 . 이러한 서사 구조는 마치 한 편의 짧은 인생극처럼 흘러갑니다 . 거창하지 않지만 절절합니다 . 소박한 가사이지만 복잡한 감정을 세세하게 담고 있습니다 .
이 곡이 단순한 반성의 노래를 넘어서 다스림의 음악으로 기능하는 데에는 그 음의 구조와 연주 방식 때문일 것입니다 . 다스림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며 스스로의 분열과 상처를 봉합해가는 과정입니다 . 기타 하나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속죄의 언어로 가득한 이 노래에 어울리게 단출합니다 .
마치 무릎 꿇고 시작하는 기도처럼 군더더기 없는 선율은 오히려 더 깊은 정서를 건드립니다 . 아길라의 목소리도 휘황한 기교 없이 조금은 거칠고 눅진하다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 안에 감정의 진동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
화성과 리듬의 구조는 단조롭게 반복되지만 이런 반복이 오히려 침잠과 반성 , 회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 이 곡은 흥얼거리는 노래가 아니라 무릎 꿇고 부르며 듣는 노래입니다 . 내 안의 어긋남과 불화 , 잊고 살았던 사랑을 직면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
이 노래가 수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번안되고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이유는 물론 이런 음악적 요소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과 오해 , 이별과 용서는 인류 보편의 주제입니다 .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1970~80 년대 , 가족 해체와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 아낙 」 노래는 어떤 답변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 모두가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이 아낙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 아낙 」 은 늦은 사랑의 노래입니다 .
이미 벌어진 일 , 지나가 버린 말 , 상처 입은 얼굴 등 , 그것들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늦은 고백이 반드시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 이 노래는 늦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다스림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해줍니다 .
우리들 삶이란 늦더라도 다시 돌아가 이름을 부르는 일임을 이 노래는 오늘도 말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 아길라는 필리핀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 아시아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
음악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 민중의 아픔을 노래한 그는 필리핀 현대사를 함께 호흡한 예술가였습니다 . 독재정권에 맞서고 빈곤과 불평등 ,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는 포크 록 , 프로테스트 송 (Protest Song) 의 주역이었습니다 .
1980 년대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곡들을 발표했습니다 . 대표적인 「 나의 조국 」 (“Bayan Ko”) 은 우리의 「 아침이슬 」 처럼 필리핀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노래입니다 .
이 「 아낙 」 들으시며 부모님께 그리고 아들딸에게 전화 한번 하시기 바랍니다 . 그렇게 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버리는 것입니다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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