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읍 구와리 언제나 유명 삼례읍 구와리는 ➀ 씨족 ➁ 부자 ➂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 예전 구와리의 씨족 비율이 전주이씨 : 전주류씨가 반반이었는데 사람은 ‘ 이씨 ’, 재산은 ‘ 류씨 ’ 가 낫다고 했다 .
류배옥 씨가 아들 류원옥을 일본 와세다 ( 早稻田 ) 대학에 입학시키고 다달이 쌀 120 섬을 보냈다는데 유학생 아들 류철수 씨의 증언이란다 . ‘ 식자우환 ( 識字憂患 )’ 이라는 말이 있다 .
“ 일정시대 배워 아는 것이 많을수록 우리나라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야하고 독립하여 다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한다 .” 이 주장 동포 귀에는 쏙쏙 들어오나 , 일본인들 입장에선 못마땅해 잡아다 가두고 벌을 주었다 .
해방정국 - 미국군정 - 세울 나라 기본 문제를 놓고 의견이 많을 때 진보적인 지식인이 이 지역에 많아 ‘ ○○ 코바 ’ 소리를 들었으나 70 여 년 전 이야기이다 . 현대사 연구 자료 이우성 선생 재판 기록이 이런 일을 뒷받침해 준다 . - 구와리의 푸르른 들판이다.
류병양 ( 柳秉養 :1864 ∼ 1940) 선생은 독보적인 한학자로 『 우루재창화편 ( 愚陋齋唱和編 : 상 · 하 ) 』 과 『 우루재원고 ( 愚陋齋原稿 ) 』 를 보면 완주의 진짜 학자 , 선비임이 확실하다 .
‘ 우루 ( 愚陋 )’ 는 류병양 선생 자호로 ‘ 어리석고 누추하다 ’ 의 뜻이나 사람마다 ‘ 아니다 ’ ‘ 아니다 ’ 절대 아니야 ’ 이런 글로만 묶어진 책이 『 우루재창화편 』 상 · 권이다 . 우루재 선생 마을이 ‘ 유리 ( 柳里 )’ 로 한 바퀴 둘러보면 묻지 않고도 깨달음이 많다 .
담장 돌은 앞내에서 건져 올린 ( 주은 ) 돌이다 . 전국 축구대회를 연 자리가 있으며 너른 들의 벼농사와 지금은 딸기 재배로 유명하다 . 우루재 선생은 젊은 선비들을 만경강 둔치에 모아 전국 백일장을 여셨는데 구경꾼을 포함 1 만 5 천명이었다고 한다 .
류 선생의 시 만흥 ( 晩興 ) “ 날마다 흐르는 푸른 물길 천리인데 ( 碧澗日千里 : 벽간일천리 )/ 늙은 회나무 봄을 맞기 100 년이구나 ( 老槐春百年 : 노괴춘백년 )/ 때때로 대하는 조화로운 사물마다 ( 對時觀物化 : 대시관물화 )/ 하나는 기쁨 그 한편은 서글픔이로구나 ( 一喜一悽然 : 일희일처연 )” 글 가운데 ‘ 노괴 ( 老槐 : 늙은 괴목 )’ 를 찾아가니 심히 처연하다 .
몸통 90% 는 썩어 가죽 ( 깝질 ) 만 남았고 장정이 발길로 힘차게 차면 넘어질 지경이랄까 간신간신한데 관계자나 당국 모두가 손을 놓고 있다 . 전주시 삼천동 장씨네 소나무처럼 보호만하면 능히 살릴 터인데 너무나도 아쉽다 .
그 곁의 냉동 창고 이름 ‘ 창화재 ( 唱和齋 )’ 라 하면 빛이 더 나고 , 대성할 상호이다 . 와리의 양봉인 ( 養蜂人 ) 다수는 6·25 전쟁 이후 벌통을 친구삼아 팔도강산을 유랑하다 전문인이 되었다고 한다 . 딸기밭 근처 정려각이나 큰 나무마다 양반 냄새가 풍풍 난다 .
류일수 ∙ 류정훈 ∙ 류해광 제씨가 이 시대 전주류씨의 큰 기둥이다 . 신지식인들은 뿌리 깊은 이런 마을에서 < 완주 정신 > 을 꼭 찾아내기 바란다 . -유리(柳里)의 딸기 밭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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