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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7.09.07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39

새우젓 안주, 고산 막걸리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7.09.07 10:54 조회 5,36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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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 안주, 고산 막걸리 ‘ 술 한 말 들고는 못가도 뱃속에 넣고는 간다 .’ 는 호주가와 ‘ 뜨물도 술이라면 마시는 ’ 애주가가 있었고 배고파 술 마신 사람 여럿이었다 .

점심 때 시장에서 만난 친구 ‘ 밥 먹자 ’ 가 아니라 ‘ 술 한 잔 하세나 ’ 하며 주점이나 주조장에 끌고 들어가 한 잔씩 하던 1950 ∼ 60 년대 이야기이다 . 주조장에 들려 술 한 되를 청하면 푹 퍼주는데 안주라곤 고작 새우젓 한 가지 .

완주이야기39
완주이야기39

오후엔 건더기는 이미 사라져 그릇 바닥엔 왕소금 덩어리만 써그럭써그럭 … . 위생이고 무어고가 없이 손으로 집어먹던 시절이었다 . 고산주조장에서 고두밥에 누룩 버무리던 일꾼이 부러웠다 . 황 ○ 술은 짐자전거에 술통을 싣고 옆에 각각 하나씩 매달아 비포장 자갈길을 달렸다 .

고산주조장은 대단해 협실에 살던 율곡리 이경근과 교사 오형곤이 부럽게 보였다 . 술 시대라 병 잘 나고 의료보험제도가 없어 신일약방 ( 김석탁 ), 김정자약방 , 유약방 ( 유홍식 ) 이 잘 되었다 .

잡화 ( 김덕용 ), 그릇 ( 김칠만 ), 쌀 ( 유삼동 ), 농기구 ( 김 ○ 권 ), 제재소 ( 이 ○ 구 ), 물감 ( 조중철 ), 학용품 ( 유탁식 ), 비료 ( 유유식 ), 옷감 ( 구영철 ), 과일 ( 서성수 ), 라디오 ( 오택선 ) 상이 잘 되어 고산 부자 (?) 소리를 들었다 .

교통이 나쁘고 정보가 어두워 부르는 게 값이요 , 감히 깎아 달라지도 못하며 제 발로 찾아드니 소비자가 천덕꾸러기였다 . 군산옥 음식점은 젊은 여인을 고용했던 업소이었다 . 양덕권 · 이정구 모친 절편과 국수 , 이 ○ 태 어머니 비빔밥은 고산내시장 대표 음식이었다 .

경주김씨 , 기계유씨 제주고씨 항렬에 ‘ 식 ( 植 )’ 자가 있어 만식 , 창식 , 태식 , 대식 , 두식이 많았고 장바닥 껄렁패와 이름이 같아 오해 받은 사람이 더러 있었다 . 오광선 · 구양서 대서소에 손님이 많았다 .

주민들은 글을 모르고 양식이 복잡한데다 공무원은 불친절해 대서소를 거쳐야만 서류가 접수됐다 . 이리저리 화가 나고 때로는 서사가 고마워 한 잔 술이 보답이었다 . 난장판 구경 왔다 주머닛돈을 발린 사람 중엔 여인들도 있었다 .

이러네저러네 푸짐한 곳은 송아지부터 대각 황소가 땅이 꺼지도록 나온 쇠전마당이다 . 거래가 이뤄지면 여기서도 막걸리 잔이 오갔다 . 닭 , 강아지 , 돼지새끼 전에도 사람이 북적거렸다 .

술을 빚어 돈을 번 이존형과 정치인 이존화는 ‘ 존 ( 存 ) 자 ’ 동항으로 민의원에 나란히 입후보하여 전주이씨 전성기를 이루었다 . 갈퀴 나뭇짐을 빼놓을 수 없다 . 장사 가장 잘 안 되는 곳은 주재소 근처로 웬일인지 장꾼이 오지 않았다 . 장수 상가는 유유식 사료점이다 .

고산주조장 복원이 왜 더디나 . 소주 맥주 위스키 양주 포도주가 젊은이의 뱃살을 찌개 한다 . 고산장에서 옛 이야기하며 막걸리 한 잔 할 만한 주점은 어디 있나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현장 사진

새우젓 안주, 고산 막걸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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