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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2.06.22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6

봄을 술에 저장하다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2.06.22 15:29 조회 4,4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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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술에 저장하다 봄꽃들이 동시다발 , 순서대로 피어나기 시작하면 봉동에 사는 인옥 씨는 이유를 모르고 바쁘다 . 지난달 초에 인옥 씨와 나는 동상의 인적 드문 임도를 따라 융단처럼 깔린 쑥을 뜯었다 .

그녀는 쑥차와 쑥술 ( 애주 , 艾酒 ) 나는 송편과 쑥술을 할 요량으로 연초록 물오른 동상의 산들이 내려다보이는 임도 양쪽을 타고 쑥을 뜯으며 망중한을 보냈다 . 인옥 씨는 요즘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고 했다 . 그녀의 술 저장고에 가보면 왜 그렇게 바쁜지 이유를 안다 .

인옥 씨의 목련주 빚기
인옥 씨의 목련주 빚기

철마다 빚어놓은 진달래주 , 목련주 , 송순주 , 창포주 , 국화주가 가득하다 . 그날도 우리는 나무 그늘에서 살랑대는 봄바람을 느끼며 김밥을 안주 삼아 목련주와 창포주를 마셨다 . 왜 꽃술 빚기를 좋아하냐고 물으니 그녀는 꽃을 넣었을 때 술맛이 달라지는 느낌이 빚을 때마다 신기하다고 말했다 .

봄꽃들이 어서 술을 빚으라고 인옥 씨를 세뇌시키는 것 아니겠냐고 나는 그녀가 봄마다 바쁜 이유를 말해줬다 . 유순하고 낙천적인 그녀에게 꽃술은 참 잘 어울리는 테마이다 . 술 빚는 재료를 기준으로 우리 술은 순곡주 ( 純穀酒 ), 가향주 ( 加香酒 ), 약용약주 ( 藥用藥酒 ) 로 분류된다 .

쌀 , 물 , 누룩으로만 빚은 술을 순곡주라 한다 . 세 가지 기본 재료에 특별한 향이나 색을 얻고 싶어 꽃이나 열매 , 잎 등을 부재료로 첨가해 빚는 술을 가향주라 하고 , 자연재료의 약성을 얻고자 부재료를 넣어 빚는 술을 약용약주라 한다 .

전통주가 부활하던 80 년대 후반부터 90 년대 초까지 우리 술은 약용약주가 대세였다 . 술을 약으로 인식해 건강과 연관 지어 마시던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 전통주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다 .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 술 본연의 맛과 향 , 개성을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음주문화가 이제는 순곡주와 가향주에 맞춰지고 있다 . 다른 나라에서도 꽃이나 향신료를 넣어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있다고 하나 , 대개 와인이나 맥주를 증류해낸 증류주에 담가 우려내는 형태이다 .

일례로 코디얼 (Cordial) 은 꽃이나 과일 등을 끓여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를 혼합해 가볍게 마시는 알콜음료이다 . 그러나 우리 술은 쌀로 술을 빚을 때 자연재료를 함께 넣어 자체로 독자적인 발효주로 완성되는 특징이 있다 .

단지 꽃을 술에 담그는 것이 아니라 꽃이 술과 함께 발효되어 새로운 형태의 화합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 아마도 쌀이라는 기본 재료가 다른 부재료와 잘 어울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옛 문헌에 나온 꽃술을 정리한 <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 가지 > 란 책에서 보듯 우리 술이 지닌 다양성과 화려함 , 멋스러움은 세계 어느 나라도 모방할 수 없다 .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조건에서 다양한 자연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 그 재료들을 어떻게 다루고 술에 활용했는지를 보면 우리 조상들의 꽃 사랑은 DNA 속에 깊이 박혀있는 감성이 아닐까 싶다 . “ 목련이 지고 목련주를 마시니 좋네요 .” 인옥 씨의 목련주를 맛보고 어떤 이가 한 말이라고 한다 .

꽃이 지고 쓸쓸할 때 꽃향기를 품은 술 한 잔은 지나간 계절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 단지 시각적인 저장이 아니라 술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 속에 담겨 상상할 수 있게 만들기에 그 위로는 더 깊이 가 닿는다 . 그래서 술을 빚는 사람들은 봄만 되면 바쁘다 .

어여쁜 꽃과 열매 , 계절이 주는 기쁨을 술에 저장하려고 말이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봄을 술에 저장하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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