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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10.23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34

음주(飮酒)의 조건, 하하호호히히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10.23 14:54 조회 3,87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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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 飮酒 ) 의 조건 , 하하호호히히 완주군 동상면에 위치한 젊은 양조장 < 삼산도가 > 에서는 세 남자가 술을 빚는다 . 3 인의 청년들이 술이라는 인연으로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 고산 ’ 을 ‘ 고산 (12% 탁주 , 13% 약주 )’ 이라는 술로 구현해냈다 .

굽이굽이 둘러싸인 산줄기에서 골골이 모여지는 만경강 최상류 물길로 농사지은 유기농 쌀로 빚어지는 술의 이력이 술병의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다 .

완주 삼산도가 호호히 (9% 탁주) 이미지출처 인스타그램@samsandoga
완주 삼산도가 호호히 (9% 탁주) 이미지출처 인스타그램@samsandoga

대중의 평균적인 입맛에 맞춘 단맛 지향적인 대한민국 전통주 시장의 흐름 속에서 삼산도가의 ‘ 고산 ’ 은 과감하게 단맛을 절제시키고 담백한 드라이함이 강조된 이색적인 술이다 . 사과나 포도의 맛이라기보다는 텃밭에서 툭 따낸 오이나 가지를 한입 베어먹을 때의 맛이다 .

삼산도가의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자극적인 양념과 달고 기름진 음식에 빠져드는 우리에게 재료 본연의 맛을 느껴보길 권하는 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 ‘ 고산 ’ 보다 도수를 낮추고 찹쌀을 좀 더 가미했다는 탁주 ‘ 호호히 (9%)’ 의 술병에는 재미난 그림이 있다 .

술병에서 하하호호히히 웃음소리가 들린다 . ‘ 음식 ( 飮食 )’ 이라는 명사는 ‘ 마실 음 ( 飮 )’ 과 ‘ 먹을 식 ( 食 )’ 두 글자가 합쳐져 있다 . 삶이란 끊임없이 ‘ 먹고 마실 것 ’ 을 구하여야 하는 엄중한 명제 위에 던져지는 것이다 .

음식은 모자라도 안되지만 넘쳐나도 안되는 절제를 요구한다 . 아름다운 향과 맛으로 혼미해지는 취기를 불러오는 술이야말로 경계를 넘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 바로 숙취다 .

머리가 지끈거리고 , 속이 울렁거려 뜨끈한 해장국을 앞에 놓고도 당최 넘기기 어려운 숙취에 시달리는 당신은 어제 무슨 일로 술을 마셨을지 궁금하다 .

기쁘고 즐거움이 지나쳤거나 , 화나고 슬픔이 지나쳐 적당히 마시자는 평정심은 내팽개쳐버리는 ,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있을 ( 그러길 바랍니다만 ) 그런 날이었지 않을까 싶다 .

소설 < 홍길동전 > 의 저자이자 조선 중기 정치가였던 허균 선생이 정리한 음주의 조건에 해당하는 이유였다면 우선 안심하겠다 . 술을 마시는 데는 5 가지 좋은 때가 있다 .

시원한 달이 뜨고 , 좋은 바람이 불고 , 유쾌한 비가 오고 , 시기에 맞는 눈이 내리는 때가 첫 번째로 맞는 일이며 , 꽃이 피고 술이 익을 때가 둘째로 맞는 일이다 .

우연한 계제에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이 세 번째 맞는 일이며 , 조금 마셔도 흥 난다면 네 번째요 , 처음에는 울적하다가 다음에는 화창하여 담론이 활발해지는 것이 다섯 번째 맞는 일이다 .

-< 한정록 >, 허균 (1569~1618)- 달이 어여쁘다고 , 가을바람이 소슬하다고 , 살가운 비가 내린다고 , 눈이 포근하게 내린다고 , 고운 꽃이 피었다고 , 좋은 술이 익었다고 , 우연히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고 , 싱거운 농담을 잘 하는 이웃이 찾아 왔다고 ...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에겐 일 년 삼백육십오일에 삼백 날에 해당하는 이유들이다 . 이유 없는 날이 어디 있겠는가 . 술이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잠깐잠깐 빛나는 순간에 함께 하는 벗과 같은 존재이니 하하호호히히 웃을 수 있는 좋은 날만 가려 마시라는 허균 선생의 멋스러운 가르침에 감탄할 뿐이다 .

굳이 술이 아니어도 좋다 .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 마시지 못하는 당신이라면 그윽한 커피 한 잔 , 차 한 잔으로도 족하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음주(飮酒)의 조건, 하하호호히히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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