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도 애잔한 술, 부의주(浮蟻酒) 술 빚기를 배우려는 분에게 ‘ 생애 첫술 빚기 ’ 로 가장 먼저 추천하는 술이 부의주이다 . 쌀을 고두밥 쪄서 식혔다가 물과 누룩을 함께 섞어 발효시키는 우리 술의 가장 기본 형태를 갖춘 술이기 때문이다 .
술 빚는 과정이 간편한 데다 경쾌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새봄에 돌담 밑에 핀 소박한 수선화 무더기를 보는 느낌의 술이다 . ‘ 맑게 가라앉힌 후에 ‘ 재강 밥알 ’ 을 조금 띄워 쓰는데 그 모양이 마치 개미가 떠다니는 것 ( 浮蟻 ) 과 같고 맛이 달고 독하며 여름날에 딱 맞다 .
《 고사촬요 ( 어숙권 著 ,1554) 》 ’ 라는 기록에서 보듯 , 부의주는 술에 지게미 밥알을 띄운 모습이 개미 알이 떠 있는 듯 보여 붙여진 이름인데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 동동주 ’ 의 다른 이름이다 .
잔치 때마다 집안에서 빚어지거나 이름난 관광지 입구마다 밥알이 동동 뜬 막걸리를 표주박으로 떠서 팔던 우리에게 친숙한 술이다 . 영화 ‘ 리틀 포레스트 ’ 에서 너무도 예쁜 주인공이 너무도 예쁜 부엌에서 다소 무심하고 터프하게 빚던 술도 바로 부의주이다 .
‘ 맛이 달고 독하며 ( 알콜도수가 높다 ) 여름철에 먹기 좋다 ’ 는 기록과 달리 관광지에서 사먹던 동동주는 시금털털하고 거무스름한 누런색으로 대개 누룩곰팡이 냄새가 심한 술이었다 .
가양주 문화가 꽃피웠던 조선시대에 민가에서 주로 빚어 마시던 부의주가 어쩌다 맛없고 마시면 머리 아픈 술로 전락했는지는 우리 술의 아픈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 식민지 내 세금포탈을 위해 일제가 주세법을 제정 (1909) 하고 집에서 술 빚기가 금지되자 우리 술은 하루아침에 밀주 신세가 된다 .
캄캄한 밤에 빚거나 술독을 짚가리 , 두엄자리에 숨기거나 바닥에 구덩이를 파서 묻어야 했다 . 술이 빨리 익도록 누룩량을 점점 늘려 급기야 10 배가 되고 , 술량을 늘리기 위해 물량도 두세 배 늘리게 된다 .
일본식 술 빚기에서 사용되던 ‘ 술약 ( 이스트 : 건조 배양효모 )’ 까지 넣어 더 급하게 발효시켜 4~5 일 만에 걸러 미숙성 상태로 마셨던 것이다 .
한국전쟁을 겪고 식량난 해결을 위해 양곡관리법 (1965) 이 제정되어 쌀로 술 빚기 마저 금지되니 양조장에서는 고구마나 밀가루 등 값싼 재료로 술을 빚어야 했다 . 맥주나 와인 같은 서양의 술이 밀물처럼 밀려오던 근현대 시기에 동동주에 대한 젊은 세대의 외면은 당연한 결과였다 .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며 고사 직전까지 임박했던 수백여 가지가 되는 우리 술 중 가장 타격을 입었던 것은 부의주였다 . 쉽게 빚어 마실 수 있는 간편성으로 인해 엄혹한 시대에 밀주로 살아남아 현재도 시골 할머니들에게서 술 빚기를 볼 수 있으나 그 방식은 옛 문헌과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
고난의 역사를 지나 살아나온 세대의 굽은 등허리처럼 변형된 부의주는 살아남았기에 고맙고도 애잔한 술이다 . ‘ 막걸리 빚기 ’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2021) 되었다 . 우리 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젊은 세대에까지 술을 배우고 빚는 문화가 넓게 자리 잡은 결과이다 .
간편성으로 인해 살아남은 부의주가 다른 복잡하고 화려한 기법의 술들에 치여 다시 외면받지 않길 바라며 누구라도 ‘ 내 손으로 빚는 생애 첫술 , 부의주 빚기 ’ 에 도전해 보시길 바란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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