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는 음주 < 새해맞이 술빚기 > 로 술 이야기를 꺼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 월이다 . 마지막 한 달 만큼은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마땅하건만 빼곡한 일정 메모는 차분한 송년을 허락하지 않는다 .
코로나 이후로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직장이나 동호회 , 동창회 등 여러 모임에서 술자리를 가져야 하는 때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 술을 좋아하지 않거나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겐 더욱 힘든 시기이고 , 화려한 술집 네온싸인에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술꾼들에겐 동짓달 겨울밤이 짧기만 한 달이다 .
식당이나 술집 유리창 너머로 술자리 풍경을 보노라면 고대 인류가 모닥불을 피우고 둥글게 앉아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고 ,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연상되며 인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그들 앞에 놓인 술병을 물끄러미 보곤 한다 . 술은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발효음식이다 .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이 웅덩이에 고여 풍기는 향긋한 액체에 이끌려 술을 발견했을 것이고 , 농경사회에서는 곡물이 자연 발효된 술을 얻는 방법을 우연히 터득한 이후로 인류는 목적 의식적으로 술을 빚게 되었다 .
거친 곡물이 어찌하여 꽃이나 과일의 아름다운 향기와 달콤한 맛을 만들어내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인류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다가 정신이 혼미해지고 ,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는 두려운 힘을 가진 이 액체를 신과 교감하기 위해 제단에 가장 먼저 바치는 고귀한 음식으로 사용했다 .
이내 취해 노래하고 , 춤추고 , 사랑하고 , 우정을 나누며 인류는 문명을 낳고 발전을 거듭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공동체 집단을 만든 성공적인 생명체로 오늘날까지 군림해왔다 . 그러나 술의 명암은 뚜렷하다 .
찬란한 문명을 낳게 한 영감의 기폭제였으나 동시에 통제하지 못하면 인간을 무력하게 파괴하는 광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 주신 ( 酒神 ) 은 어찌하여 아름다운 맛과 향으로 인간을 매혹하는 술에 그런 광기를 숨겨두었을까 . 마치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려는 듯 말이다 .
대형마트 진열대에 놓인 수백 가지가 넘는 술병들을 보며 명과 암의 경계에 위태롭게 선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 매일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쏟아져 나오는 술이 개인의 이성과 통제력 따위를 고려할 리 없잖은가 .
처음 술을 빚어본 사람들은 “ 술을 빚으며 너무 행복했어요 .” “ 직접 빚어보니 술이 너무 소중해요 .” 라고 말한다 . 자연의 순리대로 시간을 두고 얻어낸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자 술이 주는 풍요로운 감정에 대면한 순간이리라 짐작해 본다 . 술을 진심으로 아끼면 함부로 마시지 않는다 .
음미하게 된다 . 곡식을 키워낸 대지와 자연 , 농부의 노고 , 술을 빚은 사람의 정성에 감사하며 말이다 . 술을 빚는 사람은 자신이 정성껏 빚은 술로 마시는 이가 잠시 행복해지길 바라는 기원을 담아 빚는다 . 그러한 술은 온화하고 다정하다 .
혼자 마신다면 자신의 내면을 좀 더 고요히 들여다보게 해주고 , 누군가와 함께 마신다면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 2022 년을 힘겹고도 묵묵히 살아낸 우리 모두를 위한 격려로 한 해를 보내는 음주라면 좋은 사람들과 / 정성껏 빚어낸 술을 / 적당히 / 즐겁게 마시길 소망한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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