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풍뎅이의 뚝심 요즈음에는 내가 시들해져서 그런가 장수풍뎅이 키우는 일에 그렇게 흥미가 나지 않는다 .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너도 나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집에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 또 이를 사업으로 하겠다고 덤비던 마을도 솔찮하게 있었다 .
지금은 그런 열풍 (?) 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 오히려 최근에는 미래 양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곤충사육에 더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
애벌레를 통에 넣고 톱밥과 젤리 ( 먹이 ) 를 넣고 키우기 시작하여 성충이 되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다시 애벌레를 키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이 생명의 신비로움을 경험하였다 . 장수풍뎅이 성충 모습 중 수컷의 모양은 위용이나 힘으로 보나 과연 장수라는 명칭이 붙여 질 만큼 힘이 세다 .
이런 곤충도 환경의 변화로 자연에서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정도이다 . 처음 만난 것도 변산의 산길을 가다 그것도 대낮에 몸의 일부 상처를 입은 장수풍뎅이 ( 수컷 ) 을 만났는데 그 흥분의 기분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
곤충세계에서 수컷이라고 모두 위용이 있고 크기가 큰 종만 있는 것이 아니다 . 크기가 천차만별로 차이를 보이고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힘이 세다고 해서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지는 않는다 . 그것은 육식동물 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있지만 말이다 .
다만 센 친구가 우수한 종을 생산하기 위한 투쟁 아닌 투쟁을 벌이는 일은 곤충세계에서도 있다 . 그러나 이런 일이 인간사회에도 있을까 ? 그렇지는 않다고 믿는다 . 마을에서 힘이 세고 멋있고 주장이 강하다고 모두 그 의견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
오히려 젊은 사람의 힘과 어르신들의 지혜가 만나야 지속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어르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몸소 체험한 지혜야말로 현대의 정보나 기술력으로 따라잡지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 힘이 세다고 , 주장이 강하다고 일이 되기도 하지만 지속가능하지는 않은 것 같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있는 역사유적이나 건축양식 , 조형물 등등의 과학성은 아직도 현대 과학에서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안다 . 이는 오래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거기에 지혜가 집대성해서 이루어낸 것이기에 풀어내지 못하고 따라가기에 급급한 것일 것이다 .
마을 일에 힘이 없다고 불편하다고 마을 어르신을 뒷방에 물러나 있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어르신들의 의견을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 그것이 힘이 없는 어르신들의 일이고 마을일에 참여를 하게 하는 장치이다 .
최근에는 귀농해서 젊은이가 마을 일을 주도하면서 도시에서의 사고능력을 지역의 , 마을의 어르신들을 잘 섬기면서 일을 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 나대지 않고 자기보다는 어르신의 행동반경에 맞추어 , 어르신의 생각하는 정도에 맞추어 일을 해 나가는 아름다움 모습을 본다 .
느리지만 천천히 마을 어르신들의 지혜를 구하고 , 거기에 힘과 사고의 폭을 담아 서두르지 않고 마을의 일을 하는 것이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 어르신들의 어설픈 생각이나 행동을 무시하지 않고 보듬고 가는 일만이 먼 미래의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는 여정일 것이다 .
/ 이근석 은 귀촌해서 고산 성재리 화전마을에 살고 있다. 전북의제21 사무처장을 거쳐 지금은 완주공동체지원센터장으로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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