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가를 시조로… 송도삼절 ( 松都三絶 ) 중 두 사람이 서로를 남몰래 사랑한 이야기가 시조로 전해지고 있다 . 화담 서경덕과 황진이의 이야기다 . 송도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서화담을 유혹하기 위해 황진이는 성거산 ( 聖居山 ) 에 은둔하고 있는 화담을 찾아간다 .
하얀 비단옷을 입은 채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초막에 들어온 황진이를 보고 화담은 황진이의 옷을 전부 벗기고 물기를 닦아준 후 마른 이부자리에 황진이를 눕혀 놓고 자신은 책상에 앉아 읽던 글을 계속 읽었다 . 밤이 깊어 지자 황진이 곁에 화담이 누웠다 .
콧대 높은 황진이는 속으로 “ 이제 되었고나 ” 하고 쾌재를 불렀지만 , 화담은 곧바로 코를 골며 잠이 들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 황진이를 대접한다 . 자신의 의도가 어긋난 황진이는 비로소 화담을 유혹하려는 마음을 접고 화담의 제자가 되어 그 곁에 남는다 .
황진이와 연인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지 화담은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긴다 .
마음이 어린 후 ( 後 ) ㅣ 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 ( 萬重雲山 ) 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하노라 - 풀이 마음이 어리석고 보나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다 만 겹 구름이 둘러싸인 성거산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오겠는가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소리를 듣고 혹시 그녀가 왔을까 화담의 시조를 들은 황진이는 답가를 남긴다 .
내 언제 무신하야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 ( 月沈三更 ) 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난 닢 소래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풀이 내가 언제 신의 없이 님을 속였기에 달 밝은 깊은 밤에 아무 일도 못하겄네 . 가을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내가 어쩌겠는가 ?
서로를 흠모하지만 마음 속의 사랑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두 사람이 각기 시조로 달랬음을 알 수 있다 . 정신적인 사랑 ( 플라토닉 러브 ) 로 끝난 화담과 황진이와는 다르게 사랑을 이루었던 사람 송강 정철과 진옥이 있다 .
조선시대 선조대왕 제위시 송강 정철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장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강계로 유배되었다 . 유배지에서도 술을 좋아했던 송강은 이별의 아쉬움으로 시문을 썼을 것이다 . 유배지 강계에서 어느날 아리따운 기녀 진옥을 만났다 .
그녀와 주고 받은 시조가 시조집 권화악부 ( 權花樂府 ) 에 정송강 여진옥상수답 (( 鄭松江 與眞玉相酬答 ) 이란 기록으로 남아있다 . 연인의 사랑 놀음과 해학이 시조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 송강이 먼저 진옥의 거문고에 맞추어 노래한다 .
옥 ( 玉 ) 이 옥이라커늘 반옥만 너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 ( 眞玉 ) 일시 적실 ( 的實 ) 하다 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 정철 ( 鄭澈 ) 근악 槿樂 ) 391- 송강의 노래가 끝나자 진옥은 곧바로 답가를 부른다 .
철 ( 鐵 ) 이 철 ( 鐵 ) 이라커늘 섭철만 녀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 ( 正鐵 ) 일시 분명하다 . 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 - 진옥 ( 眞玉 ) 근악 槿樂 ) 392- 진옥의 노래가 끝나자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송강은 탄복한다 .
희롱하듯이 은유적 표현으로 노래한 자신의 시조에 진옥은 대구형식으로 멋지게 노래했다 . 두 사람은 상대를 서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
반옥은 진짜 죽은 이의 입에 넣어주던 밥으로 만든 가짜 옥인데 비해 진짜 옥 ( 眞玉 ) 을 기녀 진옥 ( 眞玉 ) 에 비유했고 , 살송곳은 남자의 성기 ( 性器 ) 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
그런 송강의 의도를 진옥은 알아듣고 자신도 역시 섭철은 잡것이 섞인 순수하지 못한 철인데 비해 송강 鄭澈 을 진짜 철 ‘ 정철 ( 正鐵 ) 이라고 표현했다 . 살송곳의 대구에 자신을 골풀무로 비유하여 노래한다 . 두 사람의 사랑은 시조놀음과 함께 깊어간다 .
대문호 송강과 도학계의 거성 ( 巨星 ) 화담과 그 연인들이 주고받은 노래속에서 깊은 해학과 철학 그리고 연정을 볼 수 있다 .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 수많은 사랑 혹은 애정 시조들이 있었을 터이다 . 사랑이 있는 곳에 노래가 있고 , 노래가 있는 곳에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변함없는 전통일까 ?
생활고를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 청년층의 고뇌가 사랑의 힘으로 깨어지기를 기대한다 . 사랑은 실패를 모른다 .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열매이기 때문이다 . 사랑노래가 오늘도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 /시조시인 명륙 안우진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