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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5.06.27

시시콜콜

난 아직 귀농하지 못했다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5.06.27 21:21 조회 5,58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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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해 봄, 10년 넘게 남들 귀농을 돕기만 하다 여기 완주로 내려왔다. 그러고 싶었지만, 농사를 지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농사나 짓지?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다. 아니,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귀농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 쪽 일을 하면서 너무도 많이 보았다. 땅 파면서 살고파서 왔지만 땅만 파서는 살 수 없는 곳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삶,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 그런 낭만과 서정은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시골살이를 등지고 돌아서며 쓴 웃음을 짓던 그들의 사연을 듣고 있을 때 슬픔보다는 부조리를 더 크게 느꼈다. 와서는 안 되었는데 와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순. “귀농귀촌의 꿈,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방송에 까지 나서서 귀농을 독려하던 농림부 장관을 보곤 분노가 치밀었다.

미루야마 겐지의 말처럼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귀농해야할 진짜 이유가 뭔가? 스스로 묻고 싶은 질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모질게 던졌다. 그러던 중에 꾹꾹 눌러온 오랜 다짐을 풀고 내가 결행해야할 시간이 왔다. 이제 내가 삶으로 답을 할 차례다. 농사만 짓고 살 수 있는가?

어떤 분은 농사가 직업이고 취미도 농사라지만 난 농사만 갖고 재미나게 살진 못하겠다. 이 질문은 중의적이다. 농사로 먹고 살 수 있겠냐는 뜻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향이 있다. 내 답은 먹고사는 문제를 피해간다. 전업이라는 본질을 비껴간다. 농사로 먹고 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또는 농사만 짓는다면 그것도 농촌문제다. 여하튼 먹고사는 문제를 농사로 풀고 싶지 않은 변명이다. 아내는 우리가 농사만 짓고 살면 더 행복할 것이라 제안하지만 세상모르는 철없는 소리로 일축한다. 왜? 겁나니까. 몰빵하면 모든 가능성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자신이 없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판단이 잘못될 경우가 많다. 장고 끝에 악수라 하지 않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버릴 수가 없다. 입지도 않는 옷이 잔뜩 쌓여 답답한 옷장처럼. 다시 직장으로 출근하는 일을 시작했다. 농사도 빼놓지 않고.

시골에서 농사 안 짓고 딴 짓만 하면 건달이 되기 십상이라는 충고는 잊지 않는다. 작년에 빌린 논 두마지기로 농지원부도 생겼고 농업경영체 등록도 했다. 명실상부, 나는 농부다. 양다리를 걸쳐도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밭은 내 키만한 풀이 무성하고 논엔 아직 물도 못 대고 있다. 작년 이맘때다. 논물을 대느라 두둑을 올리고 있는데 지나시던 어르신 한 분이 물으신다. 농사 얼마나 짓누? 난 인사를 올리며 아예, 보시다시피 논 2마지기와 집에 딸린 밭이 100여 평 됩니다. 뭐하누? 예?

아니 농사를 안 하면 딴 일을 할 게 아녀? 난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었다. 손에 쥔 새를 놓지 못하고 덤불속 아름다운 새에 빠져있는 것처럼. 난 아직 귀농을 하지 않았다. /박용범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 박용범은 적당한 생활기술의 보급이라는 목적으로 왔다.

힘이 부치지만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깜냥을 잘 모르고 삶의 전환을 위한 기술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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