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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9.01.29

바닥의 걸어서

시내버스에서 성추행범 퇴치하기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9.01.29 15:59 조회 5,18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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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에서 성추행범 퇴치하기 나는 오늘도 읽고 말한다 <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 이민경 지음 ) 전주 시내에 갈 일이 생기면 바짝 긴장한다 . 자가용을 운전해 가기엔 주차와 교통체증이 걱정이라 주로 535 버스를 타는데 가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

앉아가지 못할 때 다리 아픈 건 물론 , 운 좋게 자리 잡고 앉았을 때조차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시끄럽게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거나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거나 뒤척거리면서 계속 거슬리게 할지도 모른다 .

[업로드] 바닥이미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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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버스에 실려 다닌 경력은 중학 시절부터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묘수는 없다 . 복잡한 시간대에는 필요이상으로 몸을 밀착시키거나 엉덩이나 가슴을 만지는 성추행범을 만날 확률이 높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더 긴장된다 .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바바리맨 ( 갑자기 알몸과 성기를 보여주며 여학생들을 놀라게 하는 성범죄자 ) 을 시작으로 성폭력 피해의 역사는 길고도 길지만 대중교통 이용으로만 한정하자면 기억 속 최초의 불쾌한 기억은 중학생 때였다 .

우리학교 학생을 가득 실은 버스는 다른 학교 앞에서도 학생들을 태워야했기에 더 복잡해졌다 . 반 발짝씩 뒤로 걸어오다가 다행히 좌석 손잡이를 잡고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해 안심한 찰라 누가 내 손을 슬쩍 만졌다 .

버스가 복잡하니까 손이 스칠 수도 있지 ,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창밖을 보는데 손잡이를 붙들고 있는 내 손을 또 누가 또 만졌다 . 이번엔 분명히 작정하고 만지는 느낌이었다 . 이상하다 . 흔들리는 버스에서 내가 유난히 예민한 거겠지 , 하고 모른 척 하려는데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 .

이번엔 혹시 누군가가 나한테 신호를 보내는 건가 , 등하교길 로맨스일까 . 이게 성추행이라고 상상할 수조차 없었으니 어떤 남학생이 매일 같은 버스에서 나를 보고 흠모하다가 오늘 용기를 내어 내 손을 잡으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애써 모른 척 했다 .

그렇게 계속 ‘ 손만짐을 당 ’ 하며 집까지 왔던 기억이 난다 . 백번 천번 양보해서 실제로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 적극적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은 폭력이다 )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

입장 바꿔 만약 내가 누군가를 좋아해서 신호를 보내고 싶다면 절대 그런 방법은 아니었겠지 . 그리고 그렇게 교복 입은 여학생의 손을 만지는 행위를 , 어떤 이유로 누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성추행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 가해는 피해자의 상식을 넘어선다 .

안타까운 점은 피해자는 언제나 , 내가 예민한가 , 실수로 부딪힌 거겠지 , 어쩌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 거겠지 , 하고 그 상황을 굳이 , 피해로 인식하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생각한다 .

직장 상사가 스치듯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졌을 때에도 , 모르는 사람이 지하철에서 내 뒤에 바짝 붙어 몸을 비벼댈 때에도 말이다 . 다른 나라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

미국이었나 멕시코였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시내 버스에 앉아 지도를 보고 있을 때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선 남성이 어깨에 성기를 비벼댔던 적도 있다 . 내가 어떻게 했을까 . 온몸이 얼어붙은 채 꼼짝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

이건 명백히 그의 실수도 호감도 아닌 게 분명하게 느껴졌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무섭고 서럽고 괴로운 시간을 겨우 견뎌 도착지에 내렸다 . 그럴 때 피해자가 취할 행동의 정답은 없다 .

강도를 만났을 때 도망칠지 , 돈을 건넬지 , 힘껏 싸워 강도를 제압할지는 개인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다른 것처럼 . 강도를 잡아 벌을 주고 , 폭행이나 협박이 범죄라는 사실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고 어린 아이처럼 아직 잘 모르는 대상에게 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그건 사회의 몫이다 .

강도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 할 수 있는 일이 개인적으로 있다면 내가 강도가 되지 않기 , 강도를 보면 신고하기 , 가벼운 폭행이나 협박과 절도가 별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거 정도다 .

나는 밤길에 만난 칼을 든 강도에게 저항할 수는 없겠지만 버스에서 누군가 내 가방에 슬쩍 손을 넣어 지갑을 빼내려고 한다면 ‘ 도둑이야 ’ 라고 소리는 칠 것 같다 . 대중교통에서의 성폭력에 대입시켜 보자면 언젠가 옆자리에 앉은 교복 입은 남학생이 엎드려 자는 척 하면서 슬쩍 허벅지를 만졌다 .

역시나 처음에는 실수겠지 , 하며 넘어갔는데 두 번 세 번 명백히 의도를 가진 손짓임이 명백하게 느껴졌다 . 그 손이 다시 허벅지에 닿았을 때 무척 떨렸지만 용기를 내어 그 손을 덥석 잡아 뿌리쳤다 . 그리고 소년을 노려봤다 .

‘ 미스 함무라비 ’ 라는 드라마에서 박차오름 판사는 지하철 성추행범을 만났을 때 보는 사람이 속시원하게 말과 행동으로 퇴치했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도 아니다 .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가해 행위를 안 하는 게 정답이지만 , 가해는 언제나 상식 밖이니까 어쩔 수 없이 뭐라도 해야 한다 .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 라고 한탄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 나를 둘러싼 세상부터라도 , 나부터라도 조금씩 변화면 세상은 바뀌니까 .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좋으니까 . 나는 오늘도 읽고 말한다 . 그런 의미에서 <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 ( 이민경 지음 )> 를 가볍게 추천한다 . /바닥(bacac) 이보현은 귀촌인이자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글 쓰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읍내 아파트에 삽니다.

현장 사진

시내버스에서 성추행범 퇴치하기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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