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기다리던 가을이 오셨다 . 한 달 넘게 이어진 ‘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무더위 ’ 가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물러난 다음이다 . 누구는 “ 한여름에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가을이더라 ” 고 했다 . 원래 가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 이번엔 그보다는 여름이 가버린 게 더 반가운 게다 .
어쨌거나 가을 . 곧장 ‘ 결실의 계절 ’ 이 따라 붙는다 . 가을걷이를 상징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 황금들녘 ’. 빛깔이 바뀌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들녘에는 지금 고개를 푹 수긴 벼이삭이 넘실댄다 . 올해도 다들 ‘ 대풍 ’ 을 내다보고 있다 . 그 앞에 ‘ 슈퍼 ’ 를 붙이는 이도 있다 .
이변이 없다면 내리 4 년 풍작인 셈이다 . 그래서 농부들은 걱정이 한 가득이다 . 풍년을 걱정하고 , 울상을 짓는 농부라니 . 정말 이상한 나라 아닌가 . 엊그제는 전라남도 농민들이 올해 거둬들인 조생종 나락 20 톤을 도청 앞에 20 톤을 쏟아버리며 쌀값폭락에 울분을 토했다 .
그 동안엔 ‘ 나락 가마 적재투쟁 ’ 이었다 . 농민의 노여움도 그만큼 격해졌다는 얘기다 . 나락 값이 30 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 쌀값은 농민의 봉급이다 . 내가 30 년 전 현장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받은 월급이 대략 15 만원 ( 일당 5 천 5 백원 ) 이었다 .
지금 봉급쟁이더러 월급 15 만원을 주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아마 세상이 뒤집히는 난리가 났을 거다 . ‘ 풍년의 역설 ’ 이라는 말로 때우기에는 사정이 너무 절박하다 . 게다가 한 두 해도 아니고 벌써 4 년째인데 , 정부는 여적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
대책은 그만 두고 “ 과잉생산이 문제 ” 라며 되레 농민을 탓하고 있다 . 한 마디로 ‘ 벼농사 짓지 마라 ’ 가 대책이다 . 실제로 ‘ 논 타작물 전환 ’ 이란 방침을 세워 반강제로 밀어붙였다 . 식량자급률 20% 대에 , 주식인 쌀마저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대체 뭐가 ‘ 과잉 ’ 이란 말인가 .
지금 김재수라는 사람이 여론을 달구고 있는 모양이다 . 농림부장관에 내정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고 , 결국 ‘ 부적격 ’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는 소식이다 . 1% 저리 특혜대출에 , ‘ 황제 전세 ’ 에 , 어머니 의료비 특혜 따위 의혹이 줄줄이 불거졌다고 한다 .
장관 쯤 해먹으려면 이 정도 비리는 필수요건이 된 지 오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 눈에 띄는 대목은 그가 오랜 농업 관료생활을 거치면서 개방농정 , 농업홀대 정책을 이끌어왔다는 지적이다 .
특히나 5 년 동안 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 사장을 지냈는데 , 유통공사는 그 동안 농산물 값이 조금만 올라도 발 빠르게 해외농산물을 들여와 가격폭락을 부채질해왔던 곳이다 . 쌀값 폭락을 부른 직접원인인 밥쌀수입 또한 유통공사 작품이다 . 하긴 농림부장관 따위의 ‘ 피라미 ’ 가 무슨 죄가 있으랴 .
‘ 시장근본주의 ’ 를 앞세워온 역대 정권 아래서 농업부처는 경제부처의 ‘ 파견대 ’ 에 지나지 않았다 . 경제정책 기조는 물론 거대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 농업부처는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농업과 농민을 ‘ 통제 ’ 하는 구실을 해왔던 것이다 . 오해하지 마시라 .
결코 농민을 위해 만든 부처가 아니라는 거 . 넉넉하게 일렁이는 들녘을 보고 있자니 다시 심란해진다 . 또 한 해를 창고에 가득 쌓인 나락을 어찌 처분할지 애태울 생각에 . 그러나 정치가 농민을 속일지라도 진짜 농부는 농사를 그만 두지 않는다 .
비록 실낱같지만 , 내일은 해가 뜨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찰박찰박 걸어갈 것이다 . 위기에 닥친 식량주권을 되찾고 , 건강한 먹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야 말로 세상을 이롭게 할 농부의 길 아니겠나 . 우리는 다시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들녘에서 풍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잔치판을 벌일 것이다 .
풍년아 , 너는 죄가 없다 . /고산 어우리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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