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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6.10.06

농촌별곡

참 서러운 시절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6.10.06 11:44 조회 5,3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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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월의 첫날 . 이틀 동안 내리던 비가 멎었다 . 하늘은 맑고 산야의 수목은 훨씬 또렷한데 ,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 어느덧 가을이 많이 깊었다 . 간밤에는 읍내 ‘ 서쪽숲 ’ 카페에서 김사인 시인의 작은 강연이 열렸다 .

‘ 술과 시 , 그리고 가을 ’ 이 주제였는데 , 어쩌다가 뒤풀이에 휘말리면서 밤늦도록 통음을 하고 말았다 . 주제 값을 한 셈인가 ? 아무튼 쓰린 속을 부여안고 이 글을 쓰고 있다 . 속을 끓게 하는 건 숙취만이 아니다 . 요즘 나라꼴이 , 세상살이가 말이 아닌 까닭이다 .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 부적격 ’ 판정을 받았음에도 대통령이 김재수 씨를 농림부장관에 임명하자 , 국회는 다시 해임안을 의결했다 . 대통령은 이 해임안마저 뿌리쳤다 . 여당이 국정감사를 보이콧하고 , 여당대표가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비공개 단식을 벌이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

이 같은 상황전개가 워낙 어이없다보니 다른 중요현안을 가리려는 물타기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 대통령의 절친이고 , 심지어 ‘ 실제 권력서열 1 위 ’ 라는 말까지 돌고 있는 최순실이라는 인물을 둘러싼 딸에 대한 특혜 , 미르재단 , K 스포츠재단 , 갖가지 비리추문이 그것이다 .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다 . 정녕 이것이 나라인가 싶어진다 . 하긴 이런 아수라장이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 그저 버릇처럼 한숨만 내쉴 뿐이다 . 정작 안타까운 일은 따로 있다 . 어느 늙은 농부의 한 맺힌 죽음 . 마치 내 일인 듯 서럽고 , 노여움이 북받친다 .

지난해 11 월 민중총궐기 집회에 나섰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1 년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 끝내 숨을 거둔 고 백남기 옹 얘기다 . 누가 보더라도 이는 국가폭력이 저지른 살인이다 . 그 때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이미 만천하에 공개돼 있다 .

그러나 그 책임을 묻는 사법절차는 감감무소식 ,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대통령부터 경찰총수에 이르기까지 사과 한 마디조차 없다 . 통탄할 노릇 아닌가 . 그 사이 연명치료로 생명을 이어오던 백남기 옹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 진상파악 , 책임자처벌 ,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도 개선 ...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다 . 얼마나 한이 맺혔을 것인지 . 그런데 적반하장이라고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한다 . 칠십 노인한테 폭력을 휘둘러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 경찰이 사망원인을 조사해 밝히겠다는 것이다 . 법원이 부검영장을 기각한 건 당연한 일이다 .

그런데 영장을 다시 청구했고 이번엔 ‘ 유가족과 협의 ’ 라는 조건을 달아 청구를 받아들였다 . 전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 정권의 온갖 압력과 회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 어쩌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는가 . 치미는 부아를 다스릴 길 없고 , 서글픔은 커져만 간다 .

고 백남기 옹은 이 나라 농업과 농민이 당한 처지 그 자체인 까닭이다 . 평생 묵묵히 농사지어 이 나라의 밥줄을 이어왔건만 그에 걸맞게 대접받은 바가 없다 . 외려 이리 치이고 , 저리 채이고 거대자본의 희생양 노릇만 해왔다 . 참다못해 농민도 함께 살자고 했더니만 물대포로 답했다 .

그의 마지막 외침은 ‘ 밥쌀 수입중단 !’ 이었다 . 서글프고 또 서글프다 . ‘ 결실의 계절 ’ 을 맞는 마음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 올해도 ‘ 황금들녘 나들이 ’ 라 해서 , 풍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동네잔치판을 벼농사모임에서 열기로 했다 .

벼이삭 익어가는 논길을 걸으며 메뚜기 잡고 , 부침개 부쳐 막걸리 잔 기울이며 , 풍물가락에 어깨춤이라도 춰보자는 것이다 . 그런데 마음 한 켠이 자꾸만 켕겨온다 . 참 서러운 시절이다 . /고산 어우리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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