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왕궁터에 꽂힌 날 겨르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 고산권벼농사두레 대표라는 , 나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지 달포 남짓 . 때마침 농한기를 만나 바쁠 일도 없으니 그야말로 유유자적 , 하루하루가 느긋하다 . 불현듯 ‘ 이리 태평해도 되나 ?’ 싶은 생각이 밀려들기도 한다 . 왜 안 그렇겠나 .
여느 해 같으면 < 농한기강좌 >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바삐 움직일 때 아니던가 . 몇 차례 기획 회의에 , 강사 섭외에 눈코 뜰 새가 없었을 즈음이다 . 그러나 새로 들어선 집행부가 올해는 강좌를 쉬어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 설령 지속하기로 방향을 정했더라도 거기 내가 끼어들 일은 없다 .
농한기강좌를 열지 않는 대신 조촐히 정월대보름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 그 준비작업 또한 내가 맡을 몫은 없다 . 그런데도 문득문득 조바심이 이는 건 그동안 몸에 밴 ‘ 관성 ’ 탓이다 . 물론 시간이 흐르면 시나브로 사라질 것이다 .
안 그래도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을 누리려고 벼두레 단톡방을 잠시 빠져나와 있다 . 어디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란 이런 것이지 싶다 . 시간을 다퉈 이뤄야 할 목적이 없으니 여유만만이다 . 어디 나다닐 일도 거의 없어 그저 내키는 대로 , 짚이는 대로 책을 펼친다 .
철학과 역사 , 사회과학을 넘나들고 , 생태와 페미니즘을 가리지 않는다 . 소설 한 권 다 읽고도 해가 남아 있으면 산책인지 , 운동인지 뒷산을 오른다 . 그러다 활자 무더기에 짓눌릴 즈음 주섬주섬 외출복을 걸치고 홀로 영화관을 찾는다 . 그 넓은 상영관을 혼자 전세 낸 날도 있었다 .
누군가 객쩍은 핑계로 술판을 벌인다 한들 마다할 까닭이 없다 . 등산동아리 ‘ 사니조아 ’ 에서 1 박 2 일 짜리 산행을 잡더라도 부담스럽지 않다 . 간밤 무리를 하는 바람에 산 중턱에서 나홀로 회군하는 사달이 난들 어쩌란 말인가 .
그러던 어느 날 유붕자원방래 , 멀리 사는 벗이 지나는 길에 느닷없이 찾아들었다 . 그래도 거리낄 게 없다 . 주거니 잣거니 쌓인 얘기를 풀다 보면 밤이 깊은 줄도 모르는 법 . 국밥 한 그릇으로 속을 풀고 벗은 귀로에 나선다 . 왕궁터미널에서 고속버스표를 끊고 보니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
바로 옆 백제왕궁터로 안내했다 . 때마침 영하의 추위에 바람까지 맵차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 했다 . 그런데 별일이다 . 자꾸만 그 궁성 옛터가 떠오르는 거다 . 참지 못하고 다음 날 그곳을 다시 찾았다 . 먼저 박물관을 찬찬히 훑은 다음 건물터와 후원 , 화장실 , 공방 유적까지 샅샅이 둘러봤다 .
집에 돌아와서도 네댓새를 관련 영상자료는 물론 문헌자료까지 훑고 나니 ‘ 백제 무왕 익산 ( 금마 ) 천도설 ’ 의 윤곽을 꿰게 되었다 . 어쩌다 왕궁터에 꽂히게 되었을까 . 아무래도 최근 다시 불거진 전주 - 완주통합 논란의 영향이지 싶다 .
이미 세 차례나 부결된 주민투표 결과를 보더라도 완주군민의 통합반대 정서는 완강한 듯하다 . 나아가 기후위기를 맞아 경제성장이 더는 시대정신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 규모의 경제 ’ 논리는 새만금 개발만큼이나 시대착오로 보인다 .
반면 전주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길게 벋은 완주군 영역은 생활권이 다르고 자치행정에 어려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 그래 , 그 옛날 금마백제 왕성 중심으로 펼쳐졌던 수부 ( 首府 ) 를 오늘에 재현하면 ( 이 경우 그 영역은 왕궁 - 여산 - 삼례 - 봉동 - 고산권을 아우른다 ) 어떨까 하는 .
물론 실현가능성 없는 몽상일 뿐이다 . 언제까지 이렇듯 유유자적 , 여유만만한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 이제 설도 쇠었고 , 대보름 지나 농사철이 임박하면 농한기도 막판에 다다른다 . 좋은 시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 /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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