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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8.01.08

농촌별곡

세월이란 참…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8.01.08 16:56 조회 5,3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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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란 참… “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20 년이 흘렀네 ?” “20 년이 아니라 30 년 전이네 !” 영화 <1987> 을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옆 동네 병훈 형님과 나눈 얘기 . 다시 셈을 해보니 30 년이 맞다 . 세월이란 참 ...

벼농사모임 풍물패 장구연습이 끝나고 보기 시작한 영화는 자정 가까워 끝났다 . 몹시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냥 헤어지기가 서운해 장구연습 뒤풀이를 겸해 술잔을 기울였다 . 영화가 다룬 그 해 , 내 나이는 스물다섯 . 그 때의 기억이며 무용담이 흘러넘칠 만도 했건만 그러지를 못했다 .

6 월 항쟁은 말할 것도 없고 뒤 이어 노동자들이 대투쟁에 나섰을 때도 나는 군대에 ‘ 묶여 ’ 있었기 때문이다 . 그 때의 자괴감까지 더해 <1987> 감상평은 술자리의 화제로 오래 머물지 못했다 . 그 대신 ‘ 세월의 덧없음 ’ 이라 해야 할 비애가 밀려들었다 .

아직 서른 중반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 1987 년은 까마득한 과거로 다가올 것이다 . 몸소 겪은 당대사가 아니 까닭이다 . 나만 해도 30 년 전이던 1987 년의 격변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 태어나기 10 년 전에 끝난 한국전쟁과 그보다 10 년 전인 일제강점기는 까마득한 과거사다 .

그 거리감이란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멀다 . 사는 세월도 덧없긴 마찬가지 . 새해가 되니 나로서는 쉰보다 예순에 더 가까워졌다 . ‘ 후줄근하다 ’ 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

언젠가 설핏 지나친 공익광고는 ‘ 백세시대 ’ 의 한평생이 하루라면 50 대는 이제 막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있었다 . 무릎은 치긴 했지만 어쩐지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더랬다 .

어쨌거나 어제 일처럼 생생한 당대사가 차곡차곡 쌓이는 어느 순간에 우리 또한 과거사의 한 조각이 되는 것이다 . 사는 게 다 그렇지 . 그러고 보니 희망차야 마땅할 새해 첫머리와 어울리지 않는 군소리를 늘어놓았지 싶다 .

세월 탓이겠지만 그보다는 생활의 변화가 크지 않은 시골살이에서 비롯된 심성이지 싶다 . 게다가 지금은 시계가 느릿느릿 돌아가는 농한기 아니던가 . 해가 바뀌어 무술년이니 황금개띠니 술렁이는 모양이지만 내가 깃들어 사는 산기슭은 고요하기만 하다 .

이번 겨울 들어 매서워진 날씨까지 더해 보통은 두문불출에 동안거 형국이다 . 그렇다고 마냥 틀어박혀 사는 건 아니다 . 엊그제처럼 영화도 보고 , 일주일에 한 번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장구채를 휘두르기도 한다 . 장구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해가 다 되어가지만 실력은 영 시원찮다 .

이 또한 세월 탓이지 싶지만 누구 앞에서 뽐낼 일 없으니 조바심 낼 것도 없다 . 그저 흥이 나는 대로 누리면 그만이지 . 마음 조릴 일이 없는 건 아니다 . 무엇보다 집밥 해먹는 이들이 갈수록 줄면서 곡간에 쌓인 나락 ( 쌀 ) 도 좀체 줄어들지 않는 거다 . 그래서 기가 꺾였나 ?

농사철은 멀었어도 미리 챙겨야 할 게 수두룩한데 엉덩이는 천근처럼 무겁고 손발도 둔하기만 하다 . 여느 해 같으면 이미 움직이고 있어야 할 벼농사모임도 반년 가까이 맥을 놓고 있다 . 새해와 어울리지 않게 을씨년스럽다 해도 어쩔 수 없다 . 농사지으며 태평하게 산다고 늘 행복한 건 아니니까 .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서 언제까지 힘들지는 않을 테니까 .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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