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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6.01.19

농촌별곡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말 농담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01.19 14:04 조회 7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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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말 농담 이건 필시 ‘사건’이라고 해야겠다. 어제, 그러니까 이 칼럼 마감일 하루 전이었다. 벼농사두레 단체톡방에 ‘완두콩 농촌별곡 원고 예상’이라는 글 하나가 떡하니 올라온 것이다. 칼럼 필자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누가 뜬금없이 남의 글을 미루어 짐작해 썼다는 말인지.

‘추수를 끝내고 햅쌀밥잔치를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어느새 달력이 12월로 넘어갔다’로 시작된 이 글은 극한의 폭염과 가을장마 탓에 버거웠던 올해 벼농사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악조건 속에서 거둬들인 결실, 햅쌀밥 한 그릇의 가치와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며칠 전 잠깐 내리다 만 ‘첫눈’을 둘러싸고 단톡방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과 지난해 이맘때의 비상계엄-내란사태를 엮어 그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겨우살이와 내년 농사를 준비하리라는 다짐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예상 원고 작성자가 벼두레 회원 철종 씨라는 걸 알고 나서는 바로 의문이 풀렸다. 그라면 능히 그럴만하다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까지 비어져 나오던 거였다. 안 그래도 철종 씨는 줄곧 이 톡방에 사회문제나 지역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기해오던 터였다.

더러는 재치와 유머가 담긴 얘깃거리도 올려왔더랬다. 그런 마당에 요 며칠 앞뒤 맥락을 짚어봤더니 철종 씨는 나름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를 지어 올린 셈이었다. 그 사정은 대략 이랬다. 지난주에 벼두레 햅쌀밥 잔치가 열렸다.

지난해처럼 고산읍내 미소시장에서 동네잔치로 벌일 요량이었으나 정미소 문제로 방아가 늦어지면서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집안잔치로 조촐하게, 그러면서도 정겨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던 것. 그 며칠 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감흥을 주체하지 못한 누군가가 그 야밤에 단톡방에 환호성을 질러 댔던 것이다. “여러분~ 첫눈이 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눈발은 거기까지. 이튿날 아침, 눈송이 하나 보이지 않는 청명한 대지를 따뜻한 햇볕이 비추던 것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누군 가가 그 멀쩡한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톡방에 올렸다.

거기에는 장난기 가득한 이런 멘트가 달려 있었다. “와~ 설국이다! 그야말로 은세계가 펼쳐졌네요.” 물론 열띤 호응이 꼬리를 물었다. “어디에 설국이?

ㅎㅎ 암만 봐도 안 보이는데요?” “맑은 눈에만 보여요” “와~ 하얗다!” 그러니까 철종 씨가 올린 예상 원고는 한동안 펼쳐진 이 소극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이벤트였던 셈이다. 짐작컨대 이 예상 원고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생성형 에이아이(AI) 프로그램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무척 높아 보인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발상과 정성이 어디란 말인가. 아마도 이 소동이 없었다면 이번 호 칼럼은 철종 씨의 예상 원고와 엇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됐을 것 같다.

이 칼럼이 <농촌별곡>라는 이름을 달고 있고, 별곡이란 게 정곡의 비주류인 ‘잡기’라는 뜻한다는 점에서 시사칼럼이나 전문가칼럼과 달리 주로 시골살이의 소소한 일상을 다뤄왔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올 한 해는 이렇게 저물어간다. 이럴 때 진짜 첫눈이라도 내려주면 오죽 좋을까. /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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