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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7.12.07

남현이의 청년일기-15

너의 것이 아니다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7.12.07 11:22 조회 5,53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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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것이 아니다 학교가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로 들끓던 시절 한 장의 대자보를 보았다 . 손으로 쓰는 대자보는 워낙 오랜만이라 유심히 보았다 . 정성을 다한 글을 사진으로 담았다 . 이 글을 읽으면 부끄러운 일은 그 일을 하는 자신이 가장 늦게 깨닫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오늘은 나의 것이 아니었던 나의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 농사만 지어선 먹고 살 수 없다 . 만나는 모든 사람이 말했다 . 가랑비에 옷이 젖듯 모두가 지나가며 말하자 곧 나도 세뇌되었다 . 농사론 안 된다 . 다른 돈벌이를 찾아야 한다 . 그렇게 나를 찾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였다 .

너의 것이 아니다.
너의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말이다 . 그렇게 이 일 저 일을 하다 완주군 블로그 관리를 맡게 되었다 . 그 곳에 사람들은 나를 진과장이라고 불렀다 . 진과장 . 이것은 대학시절부터 붙어있던 별명이었다 .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 산골에 집을 짓고 무릉도원을 건설하겠다고 했을 때 ,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웃으며 나를 진과장이라 불러주었다 . 완주에서 다시 그 별호를 마주치자 신선했다 . 벌이도 쏠쏠했다 . 여기서 번 돈으로 농자재를 사고 , 친구들이 오면 맛있는 것 사주고 , 영화제를 열었다 .

그런데 날이 서늘해져가자 농사는 시늉이었고 , 진과장이라는 호칭만이 남아있었다 . 육체로 이룩한 노동은 신성하다 배웠다 . 가끔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흙 뭍은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면 괜스레 자랑스러웠다 . 그런데 그 흙 뭍은 신발을 신고 가지 못할 곳을 다니고 있었다 .

사람들은 이 복색을 신기하게 보았다 . 시선이 반복되자 마음에서 흙에 대한 부끄러움이 일었다 . 몸으로 노동하는 자가 노동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된 것이다 . 자기부정의 결과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 나는 왜 아무도 모르는 완주로 왔던가 .

양복을 입고 , 혀를 놀리며 살려고 이 머나먼 타향으로 왔는가 . 생존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오래전부터의 학습이 있었다 . 주변에선 이것을 현실감각이라 불렀다 . 진남현의 귀농은 말은 이상적이었지만 행동은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 농사를 위해서라 말하며 돈을 벌었다 .

그 돈으로 씨를 뿌렸지만 , 돈을 버느라 풀을 잡지 못했고 ,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 농민이 농사를 짓기 위해 다른 일을 업으로 삼다 발생한 일이었다 . 문전옥답을 꿈꾸고 너멍굴로 들어갔지만 , 너멍굴에 있는 시간은 하루에 4 시간을 넘기 힘들었다 .

이 현실감각으로 말미암아 진남현의 자본은 불었지만 , 욕망의 크기도 같이 늘었다 .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한가 ? 왜 농민이 농사로 돈을 벌지 못하는가 ? 자괴감과 욕망이 뒤섞인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 초등학교 때 바둑학원을 다녔었다 . 바둑은 나에게 너무 신사적인 게임이었다 .

바둑은 지고나면 상대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 그 승복의 몸짓은 상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규칙에 승복하는 것이라 느꼈다 . 인생에 패색이 드리워도 규칙에 승복 할 수는 없다 . 패색이 짙은 판은 엎고 다시 해야 한다 .

농사를 짓기 위해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이 규칙은 엎어버리고 다시 규칙을 세우겠다 .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닌 진 과장이란 호칭과 흙 없는 공간을 벗어나겠다 . 너멍굴 골짜기 대장 진남현은 농사 이외의 소득은 모두 정리할 것이며 , 이 곳에 펜으로 한 달간의 안부를 전하는 것도 그만하겠다 .

나의 것이 아닌 것들은 모두 정리하고 오로지 나의 것으로만 채워 골짜기를 내려오려 한다 . 그 때 당당하고 반갑게 다시 만나길 희망한다 .<끝>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현장 사진

너의 것이 아니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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