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예찬 시골은 탈 것이고 , 농민은 트럭이다 . 완주에서의 새 삶이 시작된 지 어언 1 년 9 개월이 흘렀다 . 자본금 100 만원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천지만물의 혼과 얼이 나를 도왔기 때문이다 .
그 중 트럭인 걸음마 1 호는 너멍굴 건국에 앞장서 그 공덕이 천하에 귀감이 될 만하였다 . 이에 그의 업적을 글로 남겨 자손만대에 귀감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 . 그는 1998 년에 태어났으며 , 호는 라보 , 그 아비는 대우라는 자이다 .
보통 그의 종족은 중고차 수출역군으로 활약하는데 아직 익산에 있던 걸음마 1 호는 타역만리로 이송되기 전 진씨와 뜻을 함께하게 되었다 . 그 익산결의가 맺어진 날은 2016 년 9 월 26 일이었다 . 그때까지만 하여도 진씨는 너멍굴에 살지 않았다 .
진씨는 삼례에서 오토바이에 의지해 고산을 전전하는 비루 한 자에 지나지 않았다 . 그러던 진씨에게 고산 너멍굴로 입성을 간언한 자가 바로 걸음마였다 . 결국 진씨는 그의 간언을 받아들여 한달 후인 2016 년 10 월 23 일 고산으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이었던 것이었다 .
1998 년에 태어났으며 , 호는 라보 , 그 아비는 대우라는 자이다. 라보 트럭은 세가지 업적이 있다. 이주 후에도 걸음마의 은공은 끊이지 않았다 . 그는 업적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 첫째는 추울 때 진씨의 발이 되어준 것이요 .
둘째는 짐을 많이 져 나르고도 피곤한 내색은커녕 진씨의 호주머니를 걱정하여 유지비를 아껴준 것이요 . 셋째는 그 생김이 단순하고 목적인 운송이라는 것만 달성한바 , 잔고장이 없고 , 수리에 적은 돈이 들어간 것이라 .
이 세 가지 덕행으로 말미암아 진씨가 너멍굴의 혹독한 자연을 개척하고 삶을 유지하는데 혁혁한 공이 있었다 . 진씨가 처음 고산으로 들어간 10 월부터 날은 급격히 추워졌다 . 산골 아래 읍민들은 추운 날에 가스차인 걸음마 1 호가 시동이 안 걸릴 것을 염려하였다 .
그러나 그 걱정을 들은 것인지 다행히 시동으로 마음을 썩이지 않고 그해 겨울을 능히 견디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 그저 견딘 것이 아니라 그는 진씨의 소중한 발이 되어주었다 .
가까이는 삼례나 봉동에서 멀리는 전주와 익산까지 걸음마는 최대 60km 라는 경이로운 스피드로 아장아장 진씨를 실어 날랐다 . 걸음마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많은 짐을 나르기도 하였다 . 처음 그를 보고 읍민들은 트럭이 맞느냐 의심하였다 .
그러나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걸음마를 보자 읍민과 골민의 민심은 어느덧 그의 진득한 행동에 감동하기 시작하였다 . 그는 여느 트럭처럼 운송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 힘이 없을 것이란 주변의 우려에도 산골로 잘도 운송 업무를 수행하였다 .
그러면서도 그가 먹는 곡기는 일주일에 2 만원을 넘지 않았으니 진씨의 호주머니까지 걱정하는 성품 고운 자였다 . 그는 시동을 걸 때 아주 오래 걸렸으며 , 시동이 꺼지고도 자기 혼자 엔진을 한참 동안 움직였다 . 이상한 행동을 자주 하였으나 돌이켜보면 그는 운송이란 목적에만 충실한 자였다 .
그에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 여름에 에어컨을 틀면 더운 공기가 나왔고 , 겨울에 히터를 틀면 찬 공기가 나왔다 . 라디오는 작동하지 않았고 , 다른 차들이 능히 갖춘다는 어떠한 전자기기도 탑재를 거부하였다 . 그는 오롯이 네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것에만 신경을 집중하였다 .
그래서 그는 잔병치례가 없었다 . 걸음마의 건강에서 고려되어야 할 유일한 사항은 엔진과 관련한 것이었으며 , 고장이 거의 없고 , 고장을 수리 하는데 비용이 10 만원이 넘지 않았다 . 너멍굴에 터를 잡은 지 벌써 1 년이 되었다 . 그간 곁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간 것들이 많았다 .
그러나 묵묵히 곁을 지킨 걸음마 1 호가 있어 혹독한 산골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 이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걸음마 예찬의 글을 지어 올리니 , 앞으로도 그의 많은 활약을 기대하는 바이다 .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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