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문턱을 넘어옵니다. 한낮의 햇살에는 아직 여름의 미련이 쨍쨍하게 남아 있지만, 아침저녁 바람에는 서늘한 기별이 묻어 있습니다. 계절은 달력보다 먼저 나뭇잎과 풀벌레와 사람의 마음에 도착하는가 봅니다. 이맘때면 양희은의 낮고 그윽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가을편지」, 고은 시인이 노랫말을 쓰고 김민기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선율은 소박하고 가사는 짧습니다. 그런데도 한번 귀에 들어오면 오래도록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꼭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달라고 합니다. 받는 이가 분명하지 않은 편지, 어쩌면 주소마저 적을 수 없는 편지. 그래서 이 노래의 ‘그대’는 떠나간 연인이기도 하고, 잊고 지낸 친구이기도 하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의 자신이기도 합니다. 문득 편지를 쓰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편지는 기다림을 견뎌야 하는 소통의 언어입니다. 편지지를 고르고, 한 자 한 자 사연을 눌러 쓰고,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인 뒤 우체통에 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떠난 마음이 상대에게 닿기까지는 며칠이 걸립니다. 답장을 받으려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다림 동안 말은 익고 마음은 깊어집니다.
곧바로 보내고 곧바로 지울 수 있는 오늘의 메시지와 달리, 편지는 사람에게 자신의 말 앞에 오래 머물도록 가르칩니다. 가을은 바로 그 머무름의 계절입니다. 봄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계절이고 여름이 자신을 힘껏 드러내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살아온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계절입니다.
잎은 빛깔을 바꾸며 자신이 품었던 햇살을 마지막으로 드러내고, 열매는 몸을 낮추어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사람도 가을 앞에서는 조금 정직해집니다.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무엇을 잃었는지를, 누구를 이겼는가보다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맞는 가을은 예전처럼 고즈넉하지만은 않습니다. 지구 곳곳에서는 폭염과 산불, 홍수와 가뭄이 서로 뒤엉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터의 아이들에게는 계절을 바라볼 창문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굶주림과 피란의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미사일은 날아가고, 총성이 멎질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참사를 실시간으로 바라보면서도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고 곧 잊어버립니다.
세계와 연결되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서로의 아픔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올가을에는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전쟁터의 이름 모를 아이에게, 불타는 숲에서 쫓겨난 짐승들에게, 홍수에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물론 그 편지가 실제로 그들에게 닿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쓰는 동안만큼은 그들의 고통이 뉴스 속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울음과 한 생명의 두려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무관심에 굳어지는 마음 하나쯤은 돌려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양희은의 목소리는 슬픔을 몰아내려 하지 않습니다.
슬픔 곁에 조용히 자리를 펴고 앉아, 그것이 제 이야기를 다 할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이것이 이 노래가 우리들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입니다. 억지로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상처를 서둘러 덮지도 않습니다. 낙엽이 한 잎씩 떨어지듯 마음속 응어리도 천천히 내려놓게 합니다.
다스림이란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마음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가을에는 짧은 편지라도 한 통 써봅시다. 세상을 향해서, 그리운 사람을 향해서, 그리고 너무 오래 돌보지 못한 우리들 자신의 마음을 향해서.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그 막막하면서도 따뜻한 부탁 속에는 아직 사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재앙과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는 이 가을, 한 통의 편지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제때 전하려는 마음이야말로 무너지는 세계를 붙들어 주는 작고도 질긴 끈일 것입니다. 그러니 가을에는 편지를 하십시다. 낙엽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땅을 덮듯, 우리들 말도 누군가의 쓸쓸한 마음 가까이 내려앉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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