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이다. 마음은 여적 섭씨 35도를 훌쩍 넘어버리던 폭염을 기억하고 있는데 새벽녘으로는 이불을 끌어당기게 되니 말이다. 완연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날씨가 가을로 접어든 것만은 틀림없다.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둥둥 떠다니는 정경은 가슴을 뻥 뚫어놓게 마련이다. “아~ 좋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산야와 수목은 짙푸름의 절정. 물론 한낮으로는 아직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쬔다. 농사꾼 마음으로야 한편으로는 이 햇볕이 한동안 이어져 오곡백과가 잘 영글기를 바라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도 나쁘지는 않으리. 그러고 보니 이제 뒷산 나들이를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한여름의 후끈한 기운과 날것들이 윙윙거리는 환경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 두어 달 만이니 나름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며칠 전에는 산길로 접어드는 들머리에 우거진 풀을 베어내 길을 뚫었다. 덥수룩한 수목의 잔가지로 우거진 오솔길은 낫으로 쳐냈다.
지구온난화가 도질수록 여름 숲은 더욱 울창해지니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가을을 준비하고 났더니 용케 알고 지난 주말 손들이 들이닥쳤다. 공자 가라사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멀리서 벗들이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서울 사는 40년 지기 예닐곱이 가을 나들이를 겸해 우르르 찾아든 것.
2~3년마다 한 번씩 들르는 새삼스럽지 않은 손들이다. 오랜 벗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거기 얹혀 바깥바람 쐬는 것도 퍽 즐거운 일이다. 우리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인근의 명소를 돌며 볼거리와 먹거리를 챙기는 뻔한 행로였다.
전통사찰 한 두 군데를 거쳐 변산의 해안도로를 따라 돌며 바닷바람을 쐰 뒤 생선회 안주에 술잔 기울이며 서해낙조에 빠지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터로 이어지는 백제역사기행이 되었다. 익산은 무왕으로 대표되는 백제 말기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삼례-봉동-고산으로 이어지는 완주 북부지역 또한 그 시대 한 문화권을 이루었을 테다. 더구나 익산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그 친근감이 각별할 수밖에. 역사를 공부했던 한 친구는 고즈넉이 서 있는 5층 석탑 앞에서 40년 전 고적답사 행적을 담은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워 보여주었다.
훤하게 벗겨진 이마와 백발을 겸연쩍어하며 풋풋했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40년 전 사진과 같은 자리에 줄지어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으로 이 자리에서 이런 모습으로 다시 사진 찍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미륵사지 옆에 들어선 국립익산박물관에서는 왕궁리 백제궁터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을 통해 그 시대의 백제사를 조명할 수 있다. 그곳이 한때 백제의 수도였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근거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유일한 3탑3금당 구조의 위용을 자랑했던 미륵사의 위용도 가람배치 모형과 출토유물, 영상자료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그에 견주어 우여곡절 끝에 해체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미륵산 꼭대기에 오르면 사방으로 백제의 옛 터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던 백제 사람들의 미감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밤늦도록 열띤 토론을 주고받는 희끗희끗한 벗들을 보면서 문뜩 든 생각이다.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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