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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6.08.14

이종민이 다스림의 음악

달빛 아래서 다시 시작되는 생

(32) 스트라이샌드 - 「기억 Memory」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08.14 16:02 조회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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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면 기억은 낮과 다른 얼굴로 찾아옵니다. 낮에는 애써 잊고 지냈던 사람과 떠나보낸 시간, 한때 빛났으나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생의 한 장면들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킵니다. 뮤지컬 《캣츠》의 「기억」은 바로 그 밤의 시간에 피어나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지나간 날을 그리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존재가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며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노래, 기억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는 재생의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캣츠》는 T. S.

[QR] 스트라이샌드 기억
[QR] 스트라이샌드 기억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바탕으로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하고 트레버 넌이 연출한 뮤지컬입니다. 1981년 런던에서 초연되었으며, 그 가사는 엘리엇의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과 「전주곡들」에 나타나는 밤거리와 기억의 이미지를 변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뮤지컬의 중심에는 늙고 초라해진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있습니다. 한때 아름답고 화려했던 그는 더 넓고 찬란한 세계를 꿈꾸며 공동체를 떠났다가 상처 입은 몸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젤리클 고양이들은 그의 남루한 모습을 경멸하며 곁을 내주지 않습니다. 그리자벨라는 무리의 가장자리에서 홀로 밤을 견딥니다.

빛바랜 털과 불안한 걸음, 한때의 우아함을 어렴풋이 간직한 몸짓은 세월에 패배한 한 존재의 초상처럼 보입니다. 그가 부르는 「기억」의 첫머리는 고요합니다. 달빛 아래 거리는 텅 비었고, 낙엽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가로등은 곧 꺼질 듯 흔들립니다. 이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황폐한 밤거리는 곧 그리자벨라의 내면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화려했던 젊음도 사라졌으며, 남은 것은 기억뿐입니다. 그런데 기억은 따뜻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잔인한 형벌입니다.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에 현재의 고독이 더욱 견디기 어렵습니다.

로이드 웨버의 선율 역시 이러한 감정의 움직임을 따라갑니다. 노래는 낮은 음역에서 망설이듯 시작합니다. 마치 오래 침묵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용기를 찾는 듯합니다. 그러나 기억이 점차 선명해지면서 선율은 높아지고 화성은 넓어집니다.

마침내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면 노래는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호소가 됩니다. “나를 만져 달라”는 간절한 호소는 육체적 접촉을 바라는 말만이 아닙니다. 나를 밀어내지 말고, 아직 살아 있는 존재로 인정해 달라는 절규입니다. 이때 어린 고양이가 먼저 그리자벨라에게 다가갑니다.

계산도 편견도 없는 작은 손길이 늙은 고양이의 몸에 닿자 다른 고양이들도 비로소 그를 받아들입니다. 이 짧은 접촉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구원은 거창한 선언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외면받은 이를 바라보는 눈길, 더럽고 초라해진 몸에 내미는 손길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무대에서 그리자벨라 역을 처음 맡은 일레인 페이지의 노래가 극중 인물의 비참함과 절박함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기억」은 이 노래를 한 인간의 보편적인 생애로 확장시켜 줍니다. 스트라이샌드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절제된 호흡과 정확한 발음, 낮고 차분한 음색 속에는 오랜 세월을 견딘 사람의 품격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노래가 고조되면 목소리는 서서히 커지며, 개인적인 회상을 넘어 삶 전체를 끌어안는 듯한 장엄함에 이릅니다.

무대 위 그리자벨라가 “나를 받아 달라”고 호소한다면, 스트라이샌드는 “상처 입은 생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비애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데에 그녀의 해석이 지닌 힘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저마다 마음속에 하나의 그리자벨라를 품고 삽니다.

사람들 앞에 내놓고 싶지 않은 실패와 후회, 늙어가는 몸과 잊힌 이름이 있습니다. 노래는 그 상처를 억지로 지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기억하고, 충분히 슬퍼한 뒤 다시 새날을 맞으라고 합니다.

상처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상처 난 존재를 다시 공동체의 품으로 데려오며, 깊은 밤을 통과한 사람에게 조용히 일러줍니다. 기억하라. 그러나 기억 속에서 무너지지 말라. 새벽이 오면 해바라기 위에 이슬이 맺히듯, 너의 생도 다시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 사진

달빛 아래서 다시 시작되는 생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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