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난 다음 날의 거리는 묘하게 허전하다. 어제까지 나부끼던 현수막은 아직 바람에 걸려 있지만 그 문장들의 열기는 벌써 식어버렸다. 확성기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당선의 환호와 낙선의 탄식은 밤새 술잔과 전화기 속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은 다시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버스는 같은 시간에 정류장에 선다. 민주주의의 큰 소동이 지나간 뒤 삶은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런 날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듣는다. 꽤 잘 어울린다.
이 노래는 본래 사랑의 상처를 노래하지만 꼭 남녀의 사랑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너무 믿었으나 상처가 된 일, 너무 기대했으나 허망하게 끝난 일, 너무 뜨겁게 붙들었으나 결국 나를 아프게 한 모든 것에 이 노래는 조용히 닿는다. 이 노래의 말은 시인 류근에게서 왔다.
류근은 이 작품을 두고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 같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참으로 그다운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랑이라는 것을 겪었는데 그 사랑이 너무 아팠으므로 다음 세상에는 차라리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은 단순한 실연의 푸념이 아니라 인간으로 산다는 일 자체에 대한 깊은 피로의 고백이다. 사랑 때문에 인간은 가장 아름다워지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가장 비참해지기도 한다. 김광석은 이 시에 직접 선율을 입혀 불렀다. 그의 노래들 가운데서도 이 곡은 드물게 블루스의 성향이 짙다.
하모니카는 젖은 바람처럼 울고 기타는 먼 길 위에서 미끄러지는 탄식처럼 들린다. 슬픔을 없애려 하지 않고 슬픔을 끌어안은 채 한 걸음 더 걷게 만드는 음악의 힘이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사랑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다스림의 음악이다.
마음의 소란을 잠재우고 상처가 더는 날뛰지 않도록 조용히 눌러 앉히는 노래다. 선거도 집단적 사랑의 한 형식이다. 우리는 사람을 믿고 말을 믿으며 더 나은 내일을 믿는다. 한 표를 던진다는 것은 아직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작은 고백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늘 보답받는 것은 아니다.
승리한 이들도 곧 권력의 무게 앞에서 흔들릴 것이고 패배한 이들도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 남는 것은 승패만이 아니다. 서로에게 남긴 상처, 과장된 말들, 갈라진 마음들, 그리고 다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도 남는다.
그럴 때 이 노래의 제목은 이상한 위로가 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체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가장 깊은 사랑의 역설이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아플 리 없다. 너무 사랑했으므로 너무 아팠고 너무 아팠으므로 이제는 그것을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해보는 것이다.
정치도, 공동체도, 고향도 마찬가지다. 너무 아픈 기대는 기대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너무 기대했기에 아픈 것이다. 영화 《클래식》의 OST로 쓰였던 이 노래는 첫사랑의 기억과도 이어져 있다. 첫사랑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끝내 다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도 그런 면이 있다.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화해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시 기대하고 다시 실망하며 이곳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의 비극이고 또한 인간의 품위다.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박상원이 진행하던 〈겨울나기〉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노래를 불렀다는 기억이다. 결과를 알고 난 뒤에야 우리는 과거의 장면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그날의 노래는 한 방송의 한 장면이 아니라, 이승에 남긴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
“너무 아픈 사랑”이라는 말은 그 뒤로 한 사람의 실연을 넘어 한 가객의 삶 전체를 감싸는 문장이 되었다. 진심으로 쓴 아픔은 오래 살아남는다. 한 사람의 상처가 수많은 사람의 위로가 되고, 한 시절의 절망이 다른 시절의 마음을 다스리는 약이 된다.
지방선거가 끝난 거리에서 이 노래를 듣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승자는 조금 겸손해지고, 패자는 조금 덜 무너지며, 유권자는 다시 생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 노래라도 들으며 그 아픔을 조용히 다스려야 한다. 김광석의 낮은 목소리와 류근의 상처 입은 문장은 오늘도 그렇게 말한다.
사랑은 끝나도 삶은 남고, 선거는 끝나도 공동체는 남는다. 그러니 다시 살아야 한다. 미워하면서가 아니라 아프면서도 서로를 아주 버리지는 않는 마음으로.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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