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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6.06.12

농촌별곡

뜸부기와 자업자득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06.12 13:14 조회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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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바라다뵈는 산자락에는 콩고물을 뿌려놓은 듯 뿌연 얼룩이 점점이 드리워져 있다. 밤꽃이 흐드러진 6월, 뒷산에 들어서면 귀에 익은 뻐꾸기 울음이 먼저 반긴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노래는 거의 조건반사라 할 수 있겠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말 타고 서울 갈 일도, 비단구두도 없는 세월이지만 주뻐야소(낮에는 뻐꾸기 소리, 밤에는 소쩍새 소리)는 지금이 모내기철임을 일러준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보름 남짓 모내기 준비로 제법 바쁘게 보냈다.

예초기 돌려 논둑에 우거진 풀을 쳐내고, 쟁기질하고, 철렁철렁 물을 잡아 논바닥 삶고(흔히 로터리 친다고 한다) 써레질을 해두었다. 이들 작업이야 이즈음의 ‘루틴’ 같은 것이니 길게 얘기할 것도 없다. 내일-모레 이틀 남짓 이앙기를 몰아 모를 심는 일만 남았다.

대부분 기계작업이니 모내기한다고 온 동네가 들썩이던 정취나 흥겨움 같은 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된 지 오래다. 그러고 보니 저 노래 속 말 탄 오빠는 말할 것도 없고 뜸부기도 아득한 얘기가 되었다. 사실 뜸부기는 모내기를 하고 벼가 좀 자란 뒤에 볏대를 꺾어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그러니 뜸부기 울음을 들으려면 아직 달포는 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설령 달포가 지난다 해도 뜸부기를 볼 일을 없을 것이다. 농약을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뜸부기가 논배미에서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탓이다.

호남평야 언저리에서 나고 자란 나는 “뜸,뜸,뜸...” 끊어질 듯 이어지는 뜸부기 울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소리가 참 아련했는데, 독극물에 내쫓겨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를 생각하니 이제 처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긴 돌아오지 못하는 것, 사라진 것이 어디 뜸부기뿐이랴.

인간의 오만함과 끝없는 욕심은 이제 지구를 극단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오직 인류만이 언어를 쓰고, 이를 바탕으로 고도의 사유를 통해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노라고. ‘휴머니즘’이라는 고귀한 이름의 인간중심주의는 그렇게 자연이라 불리는 무생물과 동식물을 가차없이 약탈해오지 않았던가.

나아가 “인간이 아니다”(비인간)가 가장 모욕적인 표현일만큼 자연에 적대적이었다. 이 유아독존의 자만이 부메랑이 되어 인류 자신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욕망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끝내 기후위기를 불렀다.

팬데믹과 수퍼박테리아 발생은 열대우림 파괴와 공장식 축산 급증에 따른 바이러스 교란과 항생제 남용의 여파라는 진단이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남용된 플라스틱의 미세입자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인공지능(AI) 또한 심상치가 않다.

시스템이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면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거니와 소요되는 막대한 전기에너지와 냉각수 등이 극심한 자원약탈과 생태파괴를 촉진할 수밖에 없다. 이 모두가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인간들이 파괴하고 능멸해온 ‘비인간’들의 반격이다.

자연생태는 말을 못 하니 스스로 어떤 작용도 못하리라 여긴다면 그건 인간의 무지이자 오만일 뿐이다. 비록 농약도 치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는 벼농사를 짓고 있지만 나는 차마 우리 논에 뜸부기가 둥지를 틀고 깃들어 살기를 바라지는 못하겠다. 사람이 염치는 있어야지.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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