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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5.07.30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흘러가는 마음의 끝에서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5.07.30 15:23 조회 2,19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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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마음의 끝에서 (19) 최백호 〈 바다 끝 〉 먼 아주 멀리 있는 저 바다 끝보다 까마득한 그곳에 태양처럼 뜨겁던 내 사랑을 두고 오자 푸른 바람만 부는 만남도 이별도 의미 없는 그곳에 구름처럼 무심한 네 맘을 놓아주자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 난 우리를 몰라 짙은 어둠만 남은 시작도 그 끝도 알 수 없는 그곳에 물결처럼 춤추던 너와 나를 놓아주자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람에 날려 흐트러지면 난 우리를 오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 난 우리를 몰라 접기 바다 끝에 가보셨나요 ?

쉽지 않은 일이지요 . 그러나 극한 슬픔에 잠기면 바다 끝이 아니라 그 너머까지 갈 수 있습니다 . 눈물의 노를 저어 “ 까마득한 그곳 ” 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 최백호의 노래 〈 바다 끝 〉 은 바로 그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 상실과 이별의 아픔을 지우기 위해서입니다 .

바다는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망각이라는 감정의 가장자리입니다 . 태양처럼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을 지우는 장소이며 ,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을 흘러 넘어가게 하는 경계입니다 . 벽 혹은 허공을 바라보며 앉아 노래하는 최백호는 격렬하게 울지 않습니다 .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애원을 하지도 않습니다 . 그저 낮고 단정한 톤으로 ‘ 내 사랑을 두고 오자 ’ ‘ 네 마음을 놓아주자 ’ 고 읊조립니다 . 그 어조는 마치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이의 그것처럼 고요하고 담백합니다 . 그러나 그 담백함이 바로 이 노래의 가장 큰 울림 비결입니다 .

모든 이별은 차분한 얼굴로 찾아오지만 그 속은 태풍처럼 무너집니다 . 〈 바다 끝 〉 은 바로 그런 이별의 이면을 담백하게 펼쳐 보여줍니다 . “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 나는 너를 몰라 ” 라는 노랫말은 스스로의 기억마저 지우려는 심경의 다른 표현입니다 .

사랑했던 기억을 억지로라도 봉인하여 스스로를 낯설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 그러나 정말 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 아직 완전히 잊지는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잊었다면 굳이 그리 말할 필요조차 없을 테니까요 . 이 노래의 후렴 “ 난 우리를 몰라 ” 는 그래서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

그것은 다짐이 아니라 되뇜입니다 . 반복하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 그건 망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차곡차곡 눌러 담는 방식입니다 . 피아노반주는 이 역설의 감정을 정교하게 감싸줍니다 . 초반의 잔잔한 선율은 마치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파도 같습니다 .

차분한 리듬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뒤엉킨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 점점 고조되는 선율은 이별의 덤덤함이 서서히 감정의 절벽으로 치닫는 순간을 포착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 그리고 마침내 어느 누구도 모르게 무너지는 듯한 순간 , 바로 그 순간에 최백호의 목소리는 다소곳이 노래를 마무리합니다 .

흘러간 감정들을 애써 잡아두지 않고 그저 흘러가게 두려는 듯 . 그래서 이 노래는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닙니다 . 그것은 삶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상실의 방식에 대한 한 편의 명상입니다 . 사랑이든 우정이든 혹은 젊음이든 ,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과 작별해야 합니다 .

그리고 그 작별은 대부분 눈물보다는 침묵으로 , 절규보다는 낮은 속삭임으로 이뤄집니다 . 〈 바다 끝 〉 은 바로 그 속삭임을 담은 노래입니다 . ‘ 이제 괜찮다 ’ 는 말보다 더 깊은 ‘ 그저 흘러가게 두는 ’ 마음 다스림의 고백인 것입니다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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