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과 달관의 처연한 아름다움 – 원장현의 [ 낙화 ]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촛불을 꺼야 하리 .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 조지훈의 [ 낙화 ] 전문 꽃이 지고 있습니다 . 꽃비로 내리기도 하고 눈처럼 흩날리기도 합니다 .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
달관의 체념을 엿볼 수 있지만 그 아래에는 탄식과 한숨도 숨어있습니다 . 꽃은 질만하니 지는 것이고 져야만 열매와 씨앗을 맺을 수 있겠지요 .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으로 인한 서글픔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습니다 . 자연의 이치라 해도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것이지요 .
여기서 특히 눈여겨볼 일은 , 꽃 지는 것에 대한 시인의 대응 자세라 하겠습니다 . 뜰에 어리는 ‘ 꽃 지는 그림자 ’ 를 차마 볼 수 없어 , 아니면 그림자라도 더 오래 보고 싶어 , 촛불을 꺼야 할지 놔둬야 할지 망설이는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고 있습니다 .
이 시에서 ‘ 속세를 멀리한 은자 ( 隱者 ) 의 체념과 정신적 자부 ( 自負 )’ 를 동시에 읽어내는 사람도 있고 , ‘ 선비로서의 기품과 달관의 고양된 정신세계 ’ 나 ‘ 정적이면서 신비감을 주는 아침녘 뜨락 ’ 과 조화를 이루는 ‘ 선적 ( 禪的 ) 고요의 분위기 ’ 를 강조하는 해설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 이것이 정녕 마지막 행의 ‘ 울고 싶어라 ’ 까지를 고려한 평가인지 ,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
조지훈 시인을 말할 때 들먹이기 십상인 ‘ 고상하고 아취 ( 雅趣 ) 있는 선비의 기품 ’ 에 갇힌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 화사한 봄꽃 하염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괜스레 해보는 것입니다 . 대금의 달인 원장현은 꽃이 지는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
낙화로 은유되는 별리의 아쉬움 , 안타까움 , 그 ‘ 울고 싶은 ’ 마음을 그리기에 대금의 절절한 흐느낌이 제격이라면 , 그것을 감싸주는 신시사이저는 성숙 혹은 결실을 위해 아픈 이별을 감수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 , 그 체념과 관조의 넉넉한 마음의 품을 그려주기에 안성맞춤이라 여긴 것은 아닐까 ?
대금이 시나위 가락으로 슬픔을 흐느낄 때 , 애이불비 ( 哀而不悲 ) 의 마음으로 이를 다독이고 받쳐주는 구름의 역할은 신시사이저가 해주고 있는 듯한 것입니다 . 떨어지는 꽃은 쓸쓸하다 . 아름답다 . 축복이다 . 열매를 맺기 위한 신의 은총이다 .
봄의 화사한 꽃 , 여름의 뜨거운 태양 , 낙화 ... 흩날리는 꽃잎들 , 하늘의 축복인 듯 아름답다 . 꽃비 , 꽃바람 , 슬프지 않다 . 꽃이 떨어져 찬란한 축복의 열매를 맺는다 .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이 곡 소개 글입니다 . 시인 못지않은 말솜씨와 감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
허기는 이런 것 없이 이런 곡을 어떻게 만들며 또 어떻게 연주할 수 있겠는지요 ? 이 곡은 1998 년에 나온 그의 세 번째 앨범 << 날개 >> 에 실려 있습니다 . 그를 최고의 대금연주자로 인정받게 해준 이 음반은 우리음악의 대중화에도 혁혁한 기여를 합니다 .
여기에는 아름다운 비상을 꿈꾸게 해주는 타이틀곡 [ 날개 ] 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 정원의 정경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 소쇄원 ], 그리고 [ 고향 가는 길 ]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그러나 대금 고유의 절절한 흐느낌을 맘껏 탐닉하게 해주는 것으로는 단연 이 곡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 이 곡 들으시며 낙화의 처연한 아름다움 한껏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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