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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08.06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끈질긴 삶의 찬가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08.06 12:49 조회 4,0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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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삶의 찬가 - [ 육자배기 ]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쏘냐 아마도 녹수가 청산을 못 잊어 휘휘 감고만 도는구나 ‘ 느림의 미학 ’ 이 제대로 구현된 품격의 가락 . 남도민요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 육자배기 ] 를 이르는 말입니다 .

내 사랑을 변함없는 푸른 산에 , 님의 사랑을 항상 변하며 흐르는 푸른 물에 비유하는 시심의 격이 우선 그럴듯합니다 . 그러다가 녹수가 오히려 청산을 못 잊어 휘휘 감고 돌 수도 있다는 반전의 상상이 애처롭지만 정겹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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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변심에도 징징대지 않고 품어주는 너름새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슬퍼도 비탄에 잠기지는 않는 애이불비 ( 哀而不悲 ) 의 처연함까지 녹아있는 , 좋아는 하지만 한 대목도 제대로 따라부르지 못하는 “ 외롭고 높고 쓸쓸 ” 한 노래입니다 . 보통 민요는 음악구조가 단순하고 가락이 서정적입니다 .

그에 비해 판소리와 산조를 키워낸 남도의 민요는 보다 풍성하고 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 “ 낮은 소리는 떨어주고 중간 소리는 평으로 내고 그보다 높은 소리는 반드시 꺽는 목을 쓰는 ” 등 아마추어들은 흉내 내기 어려운 구성진 멋을 풍기는 것이 남도민요의 공통적 특징입니다 .

소리판을 이끄는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불리다 보니 예술성 짙은 성악곡으로 발전해 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 육자배기 ] 는 이런 남도민요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 가락도 아름답고 가사까지 정교하여 우리 민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원래는 밭에서 김을 매거나 길쌈을 할 때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흥얼거리던 일노래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 이청준의 「 해변의 육자배기 」 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

“ 아기를 볼 때나 길쌈 일을 할 때나 남도 여인들은 흔히 그 한숨을 내뿜는듯한 이상스런 가락의 노랫소리 같은 걸 웅얼대길 잘하는데 , 말이 곧 노래가 되고 노래가 곧 말이 되는 그 육자배기 가락 같은 웅얼거림 소리는 여인네가 모이는 밭머리 근처엔 더구나 흔했다 .

어머니 역시도 밭을 매면서 언제나 그 웅얼거림을 지녔었다 . 입으로 소리를 웅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 몸 전체로 당신의 소리를 지니고 다니면서 이랑이랑 그것을 뿌리고 다니는 것 같은 , 그런 느낌의 괴상한 소리였다 .

그것이 마치 어머니가 누려온 끈질긴 삶의 찬가라도 되는 듯이 ,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쉬임없이 지니고 불러내야 하는 필생의 노래나 되듯이 말이다 . 어머니는 그 당신의 소리에 젖어서 당신의 일을 끝내는 것도 잊은 듯이 보였다 .”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슬픔이라 했습니다 .

슬퍼할 일은 어디에도 있고 언제라도 찾아옵니다 . 그리고 그것이 찾아오면 다른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 문제는 그런 강력하고 불가피한 슬픔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가에 있습니다 .

시인이야말로 “ 자신이 처한 시대와 뭇 목숨들의 열망에 깊이 사무쳐 , 뜨겁게 때로 섧게 울고 부르짖는 자 ”( 김사인 ) 이니 시를 읽으라 권할 수 있습니다 . 그런 시를 가사로 신묘한 가락을 더한 것이 노래요 민요이니 이런 음악에 기대보라 하는 것도 허한 주문만은 아닐 듯싶습니다 .

다스림의 음악을 자꾸 되뇌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 더구나 이 [ 육자배기 ] 는 보통 여러 사람이 이어 부르는데 “~ 고나 ( 구나 ) 헤 ” 의 후렴을 함께 부르면서 노래를 이어갑니다 .

마치 서로의 설움이나 슬픔을 공감하며 “ 그려 !” “ 맞어 !” “ 그렇지 !” “ 아무렴 !” 맞장구를 치며 격려 위로하는 듯합니다 . 슬픔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서로 나누면 견딜만하게 무뎌지겠지요 .

이 처연하고 아름다운 , 아니 슬퍼서 아름답고 절절한 남도민요의 백미 , 폭염과 폭우의 아수라장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라도 자주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은 제가 특히 아끼는 희귀 영상 하나 피서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

30 여 년 전 진도 조공례 명인 댁에서 동네 아낙들이 평상에 모여 앉아 부르는 모습입니다 . 옛 우리 어머니들은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런 식으로 모여 피로도 풀고 설움도 달랬을 것입니다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 사진

끈질긴 삶의 찬가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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