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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6.02.24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그리움을 추모하는 노래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02.24 13:31 조회 4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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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추모하는 노래 (26) 박인수의 [향수] 원래도 한국 현대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정지용의 〈 향수 〉 는 김희갑의 선율을 만나 성격이 조금 바뀌면서 유명세를 더해갑니다 . 단순히 읽는 시가 아니라 한국인의 귀와 목에 붙은 공동의 기억이 된 것입니다 .

특히나 이동원과 박인수의 듀엣은 이 노래를 개인의 향수에서 세대의 향수로 확장시켜주기까지 합니다 . 이동원의 대중가요적 서정과 박인수의 성악적 깊이와 진정성이 만나 사적인 그리움과 공적인 품격을 동시에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 정지용의 시는 감각의 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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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 “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 “ 서리 까마귀 우지짖 ” 는 지붕 등 , 이건 의미의 영역을 넘어 소리와 냄새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 김희갑의 곡 또한 이 감각을 설명하지 않고 머무르게 만듭니다 .

선율이 한 번에 뻗지 않고 조금씩 올라갔다가 멈추고 다시 젖어들듯 이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 어쩌면 우리들 기억이 되살아나는 방식이 이를 닮았을 것입니다 . 추억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돌아오니까요 .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후렴구는 시나 노래 모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마법의 지점입니다 . 그러나 미묘한 차이는 감지할 수 있습니다 . 시에서는 꽤 강한 단정으로 읽히지만 노래에서는 탄식으로 들립니다 .

시는 잊지 못하겠다는 것을 수사를 통해 적시하지만 노래는 사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다는 가슴 속 비밀을 은근히 들려줍니다 . 그래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잠시 멈춰 서게 하는 것입니다 . 이 노래를 유독 좋아하고 또 잘 부르던 , 제가 많이 따랐던 , 선배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

한 분은 통증의학을 전공하셨지만 첼로 연주까지 할 수 있는 준 프로 음악가였습니다 . 다른 한 분 역시 셰익스피어 전공교수였지만 대금과 거문고를 다룰 줄 아는 찐 음악 애호가였습니다 .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그렇게 너그러운 분들이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서둘러 떠나셨을까 ?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 어느 “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신던 곳 ” 으로 그렇게 황망하게 떠나버린 것일까 ? 이동원과 박인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를 달래봅니다 . 이 곡이 위로가 되는 것은 어떤 희망을 말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

오히려 이 노래는 상실을 상실이라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달래줍니다 . ‘ 괜찮아질 거야 ’ 가 아니라 ‘ 그리운 건 그리운 거야 ’ 라고 말해줌으로써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 이 노래가 있어 그 분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

듀엣이 만드는 두 겹의 층위가 이런 효과를 배가시켜줍니다 . 이 노래를 혼자 부르면 대개 개인의 회상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 하지만 둘이 교차하면 갑자기 차원이 달라집니다 .

한 사람 안의 두 목소리 , 예를 들면 젊은 날의 나와 꽤 긴 세월을 건너온 나 , 아니면 떠나온 이의 마음과 남아 있는 이의 마음을 함께 머금고 있습니다 . 그래서 그리움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어떤 오묘한 구조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

죽음이 그냥 단절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어지는 삶의 한 부분임을 더 잘 느끼게 해줍니다 . 이 시와 노래의 핵심 매력은 촌스럽지 않은 향수에 있을 것입니다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자칫하면 금방 촌스러워지거나 눈물 짜는 감상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

하지만 정지용 시인은 과장된 언어를 억제함으로써 품격을 유지했고 김희갑의 선율 또한 눈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 슬픔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슬픔을 다독여주는 것입니다 . 두 선배 교수님의 중저음 바리톤 음색이 똑 그랬습니다 .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시와 노래가 그리는 것이 터로서의 고향을 넘어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 고향이 없는 사람도 이 노래를 들으며 울컥해질 수 있습니다 . 누구에게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은 있기 때문입니다 .

이 노래에 귀 기울이며 되새기는 것은 잃어버린 것들을 품고도 우리는 살아간다 ! 아니 살아갈 수 있다 , 살아가야 한다 ! 는 것입니다 . 추모의 정에 이끌려 너무 과하게 새겼나요 ? 그러나 슬픔을 더 크게 키우는 노래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

슬픔을 우리가 견딜만하게 , 살아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바꿔주고 있는 것입니다 . 음악의 힘이요 시의 효용이라 하겠습니다 . 두 분 선배 교수님이 이동원과 박인수가 되어 함께 부르는 노래가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 너머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

그 분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 차마 꿈엔들 잊힐 리 ” 있겠는지요 ? / 이종민 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 사진

그리움을 추모하는 노래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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