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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1.01.05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75

소양면 신원리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1.01.05 11:11 조회 4,67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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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아 명당 많은 소양면 신원리 ( 新元里 ) 완주군 삼례 · 봉동 · 이서 빼면 거의 산간지대이다 . 소양면 ‘ 신원리 ( 新元里 )’ 와 동상면 ‘ 신월리 ( 新月里 )’ 는 산이 많고 들 적기로는 마찬가지이나 각각 다른 마을이다 .

신원리는 ‘ 대승리 - 하리 - 상리 - 원신원 - 반곡 ’ 등 지역이 넓어 하루 돌기엔 벅차다 . 오늘은 주로 대승리 ( 大勝里 ) 쪽에 집중한다 . 구진리 ( 화심 ) 순두부마을에서 55 번 도로 동상면 방향 이 골짝이가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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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리 ( 大勝里 )’ 는 한자로 < 큰 대 ( 大 )· 이길 승 ( 勝 )> 이라 → 이 곳에서 대판거리 싸움이 벌어져 이긴 곳 → ‘ 대승리 ’ 로 보기 쉬우나 전쟁과는 관계없고 , ‘ 경치 좋은 곳 ’ 으로 봐야 한다 . 여기 승 ( 勝 ) 은 → ‘ 낫다 . 훌륭하다 .

경치 좋다 .’ 이다 . 경상남도 거창군 수승대 ( 搜勝臺 ) ‘ 이기려 찾다 .’ 뜻이 아니라 → ‘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보라 ’ 는 의미이다 . 소양면을 한 눈으로 살펴볼 때 ‘ 산 ’ 과 ‘ 묘 ’ 이야기가 많다 . 대승리에서 전주최씨 만육 최양 ( 崔瀁 ) 선생 묘가 단연 우뚝하다 .

개성 선죽교하면 포은 정몽주 선생이 떠오르고 , 정몽주 선생 생질이 바로 ‘ 최양 ’ 이다 . 혈족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성계가 ‘ 백함 친구여 !’ 할 정도이었고 , 전주 땅을 뭉떵 준다 해도 사양한 인물이며 , 이런 이야기책이 『 금감록 ( 金鑑錄 ) 』 인데 내게도 있다 .

고려에서 지위가 대단하며 ( 대제학 ) 신도비문 ( 神道碑文 ) 을 읽어보면 자세한데 한자를 몰라 읽지 못하는 자손과 젊은이가 걱정이다 . 최양 선생의 재실이 ‘ 대승재 ( 大承齋 )’ 이다 .

대승리에 있으니 → ‘ 大勝齋 ’ 라 하기 쉬운데 , 최씨는 할아버님 정신을 대대손손 ‘ 이어나가자 ( 承 )’ 는 데에 초점을 두어 → ‘ 대승재 ( 大承齋 ) ’ 라 했다 . 이게 ‘ 씨족정신 ’·‘ 조상숭모정신 ’ 이다 . 자손들마다 논밭은 적을지라도 이런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

그래서 ‘ 살아 있는 김씨 셋이 죽은 최씨 하나를 못 당한다 !’ 이 말은 ‘ 최씨 강인하다 ’ 는 멋진 표현이 아닌가 . 대승사 ( 大勝祠 ) 도 기억해야한다 . 남양홍씨 사우 ( 祠宇 ) 로 홍남립 ( 洪南立 ) 선생을 모셨는데 선생은 글이 좋아 전주의 명문이었다 .

『 완산지 ( 完山誌 ) 』 에 글 여러 편이 있다 . 홍남립 선생도 훌륭하지만 후손들이 조상을 하늘처럼 떠받든다 . 자동차가 있고 길이 좋으니 날 잡아 대승동에 들려 무덤 · 재실 · 사당 · 경치에 빠져보면 자신이 보일 것이다 .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한지공예공방촌 이다 .

원래 소양면은 산지로 닥나무가 많아 지소가 흔했고 , 이 가운데 송광 ( 대흥리 ) 이 유명했다 . 한지마을 조성 후보지로 1 순위였으나 당시 군의원 홍 모씨의 노력으로 대승리에 들어섰다고 한다 . 나라나 지방이나 사람이 나야 지역이 발전한다 . 동상면을 거처 밤재 넘어 그냥 스치지 말고 들릴만하다 .

그런데 농촌 누가 굳건하게 ‘ 지켜나갈 것인가 ’ 다 함께 고민할 문제이다 .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현장 사진

소양면 신원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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