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면 마치리 정수사 골 완주군에 송치 · 승치 · 대치 등 ‘ 치 ’ 자 든 이름 많으나 가장 멋진 곳은 바로 상관면 마치리이다 . 자가용 없는 분은 전주에서 시내버스 785 번을 타면 편히 오갈 수 있다 .
마치에서 무덤 보기 어려운데 산이 높고 험하여 묘 쓸 유택지 ( 幽宅地 ) 가 귀하기 때문이다 .
▵ 안내판 따라 오르면 정수사 ( 淨水寺 ) 주차장이고 경내에 극락전 , 관음전 , 지장각 , 범종각 , 삼성각 , 용곡당 , 요사 ( 寮舍 :5 칸 ) 누정 ( 樓亭 ) 이 있으며 , 관음전 현판은 일중 ( 一中 ) 거사 , 지장각은 현암 ( 玄庵 ), 극락전은 최규천 ( 崔圭千 ) 글씨이다 .
산 전체 이름이 만덕산 ( 萬德山 ) 이며 , 겨울엔 나목 ( 裸木 ) 사이로 보이는 저편 세상이 매우 아름답고 , 봄 · 가을까지 ‘ 금강산 저리가라 ’ 할 정도로 그윽한 고장이다 . 저수지 물 왜 맑을까 ? ‘ 정수사 ( 淨水寺 )’ 절 이름이 뒷받침해준다 .
극락전이 북향하였고 여기저기 건물을 여유 있게 배치하여 안정감이 든다 . 누각에 없는 현판 글씨 쓰기를 자천타천 해볼 만하다 . 극락전 중앙에 ‘ 여래상 ’. 보기에 왼편에는 ‘ 관음보살 ( 자비 상징 )’, 바른편엔 ‘ 대세지보살 ( 고통을 잊게 하는 부처 )’ 을 모셨다 .
나무로 된 3 존불 모두 1652 년 ( 효종 3) 제작 되었다는데 높이는 1m 안팎이다 . 마당의 5 층탑 그리 높지 않으며 , 부도 2 기는 큰길가에 나란히 서있다 . ▵ 서기 1972 년에 세운 희천 ( 熙川 ) 김씨 재실이 귀물이다 .
한옥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으며 대문 밖의 재실 중건비 글은 김인기 ( 金麟基 ) 가 지었고 , 글씨는 김곤 ( 金坤 ) 이 썼는데 모두 한자이다 . 김준계 ( 金遵階 ) 장군 묘 안내판이 있다 .
▴ 김 장군은 전주 사람으로 선조 16 년 (1583) 무과에 합격 ▴ 선조 36 년 (1603) 경기 수사 ( 水使 ) ▴ 광해군 2 년 (1610) 호서절도사 ▴ 광해군 10 년 (1618) 훈련대장 ( 訓練大將 ) 을 역임했고 ▴ 임진왜란 때 공이 있어 선무원종공신이다 .
▵ 근래까지 마치분교가 있었으나 1990 년 2 학급에 학생 겨우 11 인 . 학교통폐합에 따라 상관초등학교에 편입되었다 . 이 자리 전주시내 동부교회에 팔려 교인들의 수양관으로 쓰인다 . 논이 없어 산에 의존하며 참나무가 많아 버섯 재배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간다 .
건설업계에서 터를 닦아 가호 ( 家戶 ) 를 늘려나간다 . 동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얼마를 가면 소양면 화심에 이른다 . 전주에서 40 리 산에 열무 심어 전주 장에 내다 팔았다는데 지금은 시설 채소 재배가 쉬워 화전 ( 火田 ) 이 사라졌다 . 물 하나만은 최고이다 .
서기 1924 년 저수지를 만들어 전주시내 식수원으로 삼았으나 , 진안 용담댐 물이 완주로 넘어와 전주권 광역상수도가 개통되자 2002 년 취수를 그쳤고 이어 2008 년 상수원 기능을 마치자 제약이 풀려 주민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단다 .
더 깊이 알고자 사람을 찾으나 만나기 어려움은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 멧돼지가 주민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 국사편찬위 史料 조사위원 ( esc2691@naver.com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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