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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3.07.25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8

나의 애주(愛酒), 애주(艾酒)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3.07.25 10:50 조회 4,29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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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주 ( 愛酒 ), 애주 ( 艾酒 ) 쑥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자 艾 ( 쑥 애 ) 로 표기한다 . 艹 ( 초 ; 풀 ) 와 乂 ( 예 ; 베다 , 다스리다 , 어질다 ) 가 합쳐 이뤄진 한자이다 .

‘ 베어내는 풀 ’, ‘ 질병을 다스리는 풀 ’, 사람을 이롭게 하는 ‘ 어진 풀 ’, 어떤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 쑥에 대한 설명이 글자 속에 들어있다 . 한 번 뿌리 내린 자리에서는 매해 쑥이 번성한다 . 쑥의 미덕은 누가 애써 키우지 않아도 어디든 자라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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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 , 산길 , 바닷가 언덕배기 , 도심 하천 변에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쑥이 자란다 . 한국의 거의 모든 길은 봄에 유행을 타듯 쑥으로 옷을 입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3 월에 마른 검불 속에 빼꼼히 나오는 그 해 첫 초록이 쑥이다 .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지닌 풀로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바구니와 칼을 들고 나서게 하는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 쑥은 다른 어떤 식물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향을 지녀 한 움큼 코에 대면 머릿속이 이내 맑아지고 겨우내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진다 . 우리 민족의 기원이 담긴 단군신화에도 쑥이 등장한다 .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은 곰이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아 한민족을 오늘날까지 번성케 하였으니 , 쓰디쓴 쑥을 먹을 줄 아는 우리 민족의 쑥 사용법은 다양하기도 하다 . 막 나온 어린 쑥은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거나 쑥 튀김을 해 먹기 좋다 .

4 월 중순이면 쑥은 10~20cm 정도 쑥쑥 자라는데 여전히 연하고 향은 더욱 진해진다 . 이때부터는 쑥을 ‘ 캔다 ’ 기 보다는 ‘ 뜯는다 ’ 는 말이 적절하다 . 손으로 툭툭 뜯어 쑥버무리 , 개떡 , 쑥 인절미 등을 해 먹는다 .

4 월 말쯤의 쑥은 향이 더욱 진해지고 줄기에 제법 살이 오르는데 이때 뜯은 쑥으로 쑥차를 하거나 술을 빚는다 . 5 월이 넘어 더워지기 시작하면 잎에 벌레들이 찾아와 알을 실어놓으니 떡이나 차 , 술을 할 요량이면 그 이전에 채취해야 한다 .

7~9 월 사이에 쑥은 아이 키만큼 자라고 꽃이 피는데 쑥대는 단단해져 낫으로 베어야 한다 . 쑥대는 잘 말려 누룩을 띄울 때 초재로 쓰거나 여름밤 시골집 마당에 모깃불로 때기도 한다 . 쑥을 넣어 빚는 ‘ 애주 ’ 라는 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속으로 약간 비웃었더랬다 .

적어도 매화 , 국화 , 진달래 , 연꽃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를 담고 싶은 꽃 정도는 되어야지 그 흔한 풀인 쑥이라니 말이다 . 쑥의 쓴맛과 독특한 향이 술과 어울릴 수 있을까도 의아했었다 .

대전에 사는 강미선 씨는 십여 년 전에 함께 술빚기를 배웠던 동기인데 그녀는 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우 열정적으로 술을 빚었었다 . 어느 날 그녀가 내민 애주를 처음 맛보고 나의 편견은 깨지고 말았다 .

맑은 청주는 매혹적인 푸르스름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 술의 단맛 속에 쌉싸름한 쑥의 맛과 향이 조화되어 매우 기품있는 맛을 품고 있었다 . 꽃으로 빚은 여러 가향주 ( 加香酒 ) 를 맛보았지만 , 쑥은 화려한 향과 색을 지닌 어떤 꽃들에도 손색없는 존재감으로 술에 녹아들어 있었다 .

강미선 씨의 애주는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주최한 ‘2010 년 국선생 선발대회 ’ 막걸리 부문에서 심사위원 최고점을 받았다 . 개인 사정으로 시상식 당일에 참석하지 못해 대상 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 그해 그녀가 빚었던 애주는 내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술로 남아 있다 . 올해도 애주를 빚었다 .

펄펄 끓는 시퍼런 쑥물로 쌀가루를 익혀 차게 식힌 후 누룩을 넣어 밑술을 빚는다 . 밑술을 빚은 지 3 일째 찹쌀을 맑게 씻어 물에 불렸다가 고두밥을 찌는데 , 뜸 들일 때 고두밥 위에 쑥을 얹는다 .

차게 식힌 고두밥을 빚어 놓았던 밑술과 함께 섞어 따뜻한 온도에서 3~4 일간 발효시켰다가 술독을 차게 식혀 50~60 일 정도 숙성시킬 예정이다 . 초여름 무더위를 지날 일이 걱정이지만 , 산길에서 쑥을 보았을 때처럼 올해의 애주를 만나볼 생각에 또 마음이 콩닥거린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나의 애주(愛酒), 애주(艾酒)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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