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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12.27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35

술향에 실어 보내온 얘기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12.27 16:26 조회 3,7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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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향에 실어 보내온 얘기 야야 . 쌀쌀헌디 뭣헐라고 여까지 왔냐 . 언덕배기라 바람이 시여 . 술 한 잔 올린다고 허믄 느그 할애비사 좋다고 허겄다 . 술이라믄 벌떡 인나 앉았겄지 . 술 빚는 것은 맘이 신산허믄 못 쓰는 것인디 술을 빚는다니 니 사는 속이 차분허구나 . 글도 자석들 키우니라 애쓰쟈 ?

모 싱구고 논이 시퍼럴 때 느그 어매 몸 풀었는디 또 딸이어서 내가 속이 상했더만 , 나 타겨서 소가지 사납던 손녀딸이 어느새 머리가 허여졌구나 . 하이고 간시엄보살 ! 이잉 ? 누룩을 한 되 썼다고 ? 거그다 술약도 안 넣고 ? 하이고 잡상 맞어라 . 누룩 그 쬐깨로 어찌케 술이 된다냐 ?

나 술빚을 적에는 쌀 한 말에 누룩이 한 말 들어갔지 . 절구통에다 누룩 빵구믄 한 다라이여 . 고두밥 쪄서 식혔다가 누룩허고 버물버물 비벼 넣고 물만 부스믄 이삼일 지나 술이 부글부글 끓었잖여 . 술약 쬐깨 넣으믄 금방 술이 괴야 . 열흘 만에도 먹고 일주일 만에도 먹고 그렸지 . 하이고 시상으나 .

술이 참말로 맛나고 독허다 . 색깔이 어찌케 이렇게 곱다냐 . 금방 짜낸 참기름 찰랑거리디끼 뇌랗고 말간허다 . 냄시도 참말로 좋다 . 요즘 시상이나 된게 찹쌀로 술 빚지 , 옛날엔 쌀 구경이나 했가니 . 노상 무시 시라구 넣은 시커먼 보리밥 근근히 먹고 살었지 .

오직허믄 순헌 느그 아부지가 한날 큰집 사촌형이 먹는 쌀밥 얘기를 꺼냈다가 내가 밥그륵을 뺏어부렀다 . 어린 것을 밥 먹어라 소리도 안허고 쫄쫄 굶겨 재웠어야 . 느그 아부지 밑으로 여섯이 줄줄이 입 벌리고 있는디 내 자신이 독살시럽지 않으믄 그 세월을 어찌케 젼뎌냈겄냐 .

곤궁헌 살림은 느그 어매도 마찬가지였지 . 농사짓는 집으로 시집오믄 밥은 안 굶겄다고 중신애비 헌티 그렸다드만 . 참말로 미안혔지만 느그 어매 한티도 독살시럽게 혔다 . 대식구 먹성에 쌀독에 바가지 긁는 소리 만날 들려도 못 들은 척 혔다 . 먹을 쌀도 없는디 술을 어찌케 빚어 .

큰집서 쌀 한 말 꿔다가 술빚어서 느그 할아버지 제사 지내고 , 일꾼들 새참 나가고 , 남은 거 여꾸다리 정가가 솥단지 걸고 쐬주 내려주믄 그놈 팔어다 쌀 갚고 그렸어 . 요시 시상은 쌀이 흔전만전여 . 내사 밥 안 굶는 시상 살아봐서 원은 없어야 .

모다덜 가난헌 시상이었다만 새끼덜 지대로 못 갈쳐 애송바친 것이 한이지 . 그렇게 귀헌 쌀로 술을 빚었는디 오죽 맛나겄냐 . 양조장 술에 비할 바가 아니지 . 뭔 지랄 났다고 술을 사 먹게 했는지 몰라 .

전쟁 나고는 먹을 쌀이 없응게 허다허다 밀가리로 술을 빚는다는디 볼테기 찢음서 먹으라혀도 못 먹겄던 술을 사먹으라니 돈이 썪어났던 개벼 . 쌀 뺏아가고 , 쇠붙이라믄 밥숟갈도 뺏어가던 놈들이 술도 못 빚게 을매나 지독시랍게 감시를 허던지 .

쇠꼬챙이 든 순사허고 세무서 직원이 술감찰 나오믄 누룩 숭기고 술단지 숭기느라 혼이 나간당게 . 걸리믄 돈 물어내고 서에 잽혀가니께 죽기 살기로 숭겼지 . 귀신 같이들 찾아내야 . 지푸락 다발이고 , 시렁 위고 , 광이고 , 헛간이고 있을만헌 디는 다 쑤시고 댕겨 .

쇠꼬챙이 한 번 쑤실 때마다 오금이 찌릿찌릿 저려서 용케 안 걸려도 다음 날이믄 몸살이 나드랑게 . 어느 산동네서 술 감찰이 뜬 거여 . 애덜이 벌써 알고 즈그 집에 달음박질쳐서 알렸겄지 . 누룩이고 술단지고 보돔고 사람들이 앞산으로 도망쳤단다 . 산으로 도망치믄 잡으러 오진 않겄지 허고 .

근디 산 중턱에서 이놈들이 미리 죽치고 있더란다 . 기어 올라오는 동네 사람들을 산 길목에서 지키고 있다가 퇴끼 몰드끼 잡어댄거지 . 참말로 몹쓸 시상을 살었다 . 밥 굶고 사는 것도 서러운디 포도시 얻은 쌀로 술도 내 맘대로 못 빚어 먹고 살었으니 말여 . 하이고 나무간세엄보살 !

쌀 한 말로 술 빚는디 물이 반 말 들어갔다고 ? 하이고 잡상 맞어라 . 쌀 한 말이 어디라고 물 두서 말은 넣어야 먹었다 허지 . 쌀이 아깝지도 않더냐 ? 참말로 태평성대 세상이 되았구나 . 두 달간 술독에 놔뒀다가 짠다고 ? 술단지를 두 달이나 놔둘 새가 어딨어 .

몰래 술을 빚는디 누룩은 숭그기라도 쉽지 , 술내 폴폴 나는 술단지를 어찌케 숭그겄냐 . 빨리 빚어서 언능 없애야지 . 긍게 누룩도 많이 넣은 거여 . 장에 갔더니 술약도 넣는다 혀서 양조장서 쓴다는 술약도 사다 넣게 되았지 . 맛이 뭣이라 궁금혀 .

누룩내도 많이 나고 맛도 니끼허니 쓰고 시고 그렸어 . 술약 쓰믄 술이 후딱 괴기는 허드라만 먹고나믄 머리도 아프다고 그려 . 그려도 없이 살던 시절에 그만허믄 호사였지 . 모심고 나락 비는 날에는 술 없으믄 일꾼들 볼 멘목이 없잖어 . 사람들이 맛 좋다고 먹고 힘나서 일해주믄 그게 보람 아니겄냐 ?

메누리들 헌티 굳이 갈치던 안혔어 . 나랏님이 허지 말라는 것을 갈쳐감서 헐 필요는 없는 일이지 . 우리 오매가 허던 것을 봐와서 나도 무단시 혔던 짓이지 . 그렇게 혀야만 허는 줄 알고 . 근디 시상이 달라진 게 동네 점빵에서도 막걸리를 사먹고 , 젊은 사람들은 맥주가 좋다고 마셨싼게 .

늙어서 심에 부치기도 헌 일이고 . 아마도 니가 시집갈 때 빚은 술이 마지막이었던 갑다 . 소가지 사난 가시내 달라는 놈 있을 때 언능 줘버리라고 내가 닥달혀서 서둘러 날 잡았지 . 열 평 아파트에 넣고 말고 할 살림살이 준비랄 것도 없었지 . 날 맞춰 술이나 빚었으까 .

자손이 장성해 출가하는 것 맹키 감사헌 일이 어디 있겄어 . 부처님 헌티도 감사허고 , 조상님 헌티도 감사허고 , 곤한 살림에 키운다고 애쓴 느그 부모 헌티도 감사헌 일이었지 . 정성딜여 빚은 술인게 내 감사헌 맘을 표시는 혔겄지 . 생을 떠나온 지 벌써 이십 년이 흘렀구나 .

삼일 만세 해에 나서 여태 살았으믄 백다섯 살이 될 판이니 생의 기억이 멀고도 아득허다 . 일곱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낳은 열일곱이나 되는 손주들을 한 놈도 모지람 없이 내 손길 가게 허니라 하루도 허투루 살아보질 않았으니 그것이 일생 나의 자랑이여 .

너희들이 장성해 자식 낳고 키움서도 오래전 할머니를 기억한다니 나라 잃고 전쟁을 지나온 고단헌 내 생이 헛되든 않았구나 . 여그 가만히 누웠어도 내 자손들이 무탈허게 잘 살기만을 기원허고 있다 . 내 무덤가에 찾아와 니가 빚은 술을 따라주며 옛이야기를 물으니 술향에 취해 오랜 일들이 솟았다 흩어진다 .

봄바람 살살 불고 볕도 따숴 술기운이 가물가물 한잠을 몰고 오는구나 . 이자 고만 말 시켜라 . 하이고 간시엄보살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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