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술 나의 할머니 임수녀 여사는 삼일만세가 있던 1919 년에 태어났다 . 살아 계신다면 올해로 104 세이다 . 일곱 자식을 키워내며 자식들 공부하는 어깨너머로 글을 익혔다고 아들들은 총명한 어머니를 내내 자랑으로 삼았다 .
집안에서는 물론이고 마을에서도 중대사를 의논드리는 어른이었고 , 아침마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곱게 땋아 비녀로 쪽을 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 할머니는 집안의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술을 빚으셨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할머니가 술을 빚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
어릴 적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안방 아랫목에 내 키만큼 높은 항아리가 빨간 밍크 이불에 덮여 있던 장면과 그때만큼은 안방 출입을 못 하게 하던 할머니의 엄한 말이 기억날 뿐이다 . “ 시앙쥐 마냥 안방 들랑날랑 허지 말어라잉 .
문 열었다 닫었다 허믄 부정타서 못 씅게 .” 철이 들어서는 나의 결혼식 날에 하객들의 식탁 위에 놓여 있던 할머니의 술병들이 기억난다 .
콜라병 , 소주병 , 환타병 입구를 비닐로 덮어 명주실로 꽁꽁 싸맨 술병들이 식탁마다 올려 있었는데 , 정신없던 그 날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 와 그 소박한 술병들을 떠올리면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치곤 한다 . 식탁마다 놓여 있던 술병들은 할머니만이 줄 수 있었던 선물이었다 .
부족한 손녀딸 결혼식에 와주어 고맙다고 , 잘 살라고 축복해준 고마운 그대들이니 촌로가 빚은 술 한 잔 드시고 복 받으시라는 축원이었다 . 결혼식 날 맛봤던 그 술이 생각나더라는 지인들의 말로 할머니의 술맛을 짐작할 뿐이었다 .
술을 빚으려면 많은 번잡한 일을 해야 하는데도 할머니의 술 빚는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술 빚기를 시작하고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었다 . 할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숱한 추억 속에 왜 술 빚는 모습이 없을까 .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과거 속으로 달려가 닫힌 기억의 방에서 억지로라도 끄집어내고 싶었다 . 누룩에 비빈 고두밥을 술독에 안치는 할머니의 간결한 손놀림과 언뜻언뜻 스치는 할머니의 흐뭇한 표정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싶었다 . 나는 술을 빚을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한다 .
할머니가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내가 할머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 할머니의 시간으로 들어간 듯 평화가 찾아온다 . 어려서 몰랐던 할머니의 일이었다 . 며느리를 여럿 두고도 술 빚는 일은 혼자 하셨다고 한다 . 아마 자신의 대에서 끝낼 일이라고 결정하셨을 것이다 .
그 결정은 나의 할머니만이 아니라 집에서 몰래 숨어 술을 빚어야 했던 밀주 ( 密酒 ) 의 시대를 겪으며 쏟아지는 신식 문물에 허망하게 밀려나던 모든 어머니의 서글픈 체념이었을 것이다 . 끊어진 실을 매듭지어 잇듯 나는 술빚기를 통해 할머니의 일을 잇는다는 생각을 한다 .
할머니의 할머니 ,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해오던 일이 이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 술이 괴었나 단지를 열어보고 , 잘 익었는지 한 모금 맛보고 , 일가친지와 이웃에게 먹일 날을 기다려 술을 거르며 그들이 품었던 정성 어린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
겨울에 빚어놓은 술독을 열어 술이 잘 익었나 맛을 보았다 . 물끄러미 나를 지켜보는 할머니는 철부지 손녀딸 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세월이 안쓰러우신가 ,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당신이 하던 술빚는 일을 힘써 지켜간다니 대견하신가 , 한 마디 툭 던지신다 . 맘을 곱게 써야 술맛도 곱다잉 .
술이 독허기만 허믄 쓰가니 . 봄꽃같이 살랑살랑 고와야지 암먼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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