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 ” 완주에 와서 살기 시작한 지 7 개월에 들어선다 .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마그내 다리 옆 둑방길로 걸어서 회사에 갔다 .
길가에 핀 코스모스 구경하랴 , 강에 노니는 오리 쳐다보랴 , 동네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에게 인사하랴 느릿느릿 걸어가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 서울에서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넣고 실려가던 때와 비교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매일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
도시에서와 전혀 다른 시간으로 살았다 . 보통 9 시에 자고 5 시도 되기 전에 일어났다 . 날이 밝아오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드는 식물 같은 시간을 보냈다 . 가끔 쓸쓸했지만 전반적으로 행복하고 감당할만큼 외롭고 괴로우면서도 건강하다 말할 수 있는 날들이었다 .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남는 시간에 집안일도 하고 , 장에 내다 팔 향초나 치약도 만들었다 . 공을 들여 커피를 내려마시고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도 했다 . 아침에 맞이하는 평화로운 시간은 마음을 다해 행복하게 썼다 .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도시에서와 다르지 않았지만 야근도 없고 업무량도 적당해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 적당히 저녁시간을 보내면 다시 그 아름다운 아침이 오니까 아주 가끔 찾아오는 쓸쓸함도 견딜 만 했다 . 그렇게 눈부신 가을날을 보냈다 . 그러다 밤이 점점 길어지는 겨울이 왔다 .
자연스레 눈은 늦게 떠졌고 때마침 일거리도 많아져 잠드는 시간도 늦어졌다 . 언제부터인지 8 시 30 분이 되어도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졌다 . 자동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백번도 더 생각했다 . 집에서 밥 한 끼 해먹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 일기는 열흘도 넘게 밀렸다 .
피할 수 없던 야근을 몇 번하고 주말마다 다른 지역으로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못 쉬었더니 서울에서 직장 다닐 때처럼 피로가 쌓여버렸다 . 2 주 만이었나 , 퇴근 후 바로 집으로 들어가 쉴 수 있던 날이 하루 생겼다 .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는 잠자리에 바로 누웠다 .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너무 오랜만이라 눈물이 나고 말았다 . 불을 끄고 한참을 울었다 .
날이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순간을 오도카니 기다리며 지켜보던 시간 ,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천천히 만들어 예쁘게 차려내고 맛있게 먹으면서 깔깔거리던 기쁨 , 강물이 흐르면서 자아내는 물결무늬를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순간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
누워서도 언제까지 뭘 해야하는지 누굴 만나야하는지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 더 좋은 문서를 만들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료를 찾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나는 이전 서울에서의 모습과 꼭 같다 .
지난 6 개월은 그렇게 산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많아서 시골의 직장인이란 도시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 왜 이렇게 다시 바빠져 버렸을까 . 아마도 도시생활의 습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인 것 같다 .
사람을 많이 만나고 , 어딘가에 가고 , 무엇인가 계속 하고 있어야 살아있다는 안심이 되던 때처럼 새로운 일을 벌이고 말았다 . 지금을 살아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는데 무엇이 모자라 새로운 일을 벌였을까 .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
백수가 친구들 만나느라 바쁘고 , 농사 짓으며 느리게 살고 싶다고 내려온 귀농인들이 각종 모임에 다니느라 바쁜 것도 비슷한 처지다 . 너무 바쁘게 살아내고 당연히 피곤에 지친다 .
(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바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귀농귀촌인들의 모임 , 을 꾸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으니 사람이란 정말 변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 평화로운 6 개월을 살았으니 재미있는 6 개월을 살겠다는 마음을 먹은 찰나 , 때마침 회사에선 적응하는 6 개월을 보냈으니 열심히 일해야 하는 6 개월이 기다리고 있다 .
공교롭게도 잡고 싶은 인연은 동시에 오고 해야할 일은 몰리기 마련이다 . 회사는 계속 바빠질 테고 일이 끝날 때까진 어찌됐든 버텨야 한다 .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귀촌인 첫 번째 시련을 잘 지나갈 수 있을까 .
* 글쓴이 바닥(badac) 이보현은 새내기 귀촌인이자 완주의 직장인으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줍거나 얻어) 쓰는 자급생활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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