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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7.12.07

완주행보

양조장행 釀造場行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7.12.07 11:25 조회 5,4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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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양조장행 釀造場行 마시자 , 한 잔의 맥주 . 용진읍 신지리 하이트진로 공장에 다녀왔다 . 오다가다 연기 나는 굴뚝을 보며 그저 , 저기 맥주 공장이 있구나 하고 생각만 했다 . 술을 즐기지 않는 터라 갓 만든 신선한 맥주를 공장에서 마시면 정말 맛있다더라 , 하는 말도 그러려니 했다 .

그러던 내가 회사 홈페이지에서 굳이 회원가입을 하고 , 최소 2 주 전에 인터넷 신청을 한 뒤 , 담당자의 확인 전화를 받고 날짜를 확정해야만 갈 수 있는 공장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

바닥 양조장행
바닥 양조장행

해외여행 중에 패키지프로그램에 포함된 와이너리투어나 맥주공장 방문을 해본 적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직접 가볼 생각은 못했다 . 정확히 언제부터 용진 공장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 견학을 마치면 맥주를 시음할 기회를 준다는 얘기는 건너건너 들었다 .

다른 지역에서 놀러온 친구에게 공장을 가리키며 언제 한번 가자고 했던 것도 같다 . 율곡리 황 씨 아저씨는 맥주를 살 때 용진공장에서 만들었는지 확인하신다고 한다 . 나도 친구들이 맥주를 마실 때 깨알 같이 적힌 우리동네 이름을 찾아 보여주곤 했다 . 그러고보니 이것도 로컬푸드구나 .

이유없이 뿌듯하고 반가워서 마치 내가 그 맥주의 생산에 털끝만큼의 영향이라도 미치는 양 자랑하곤 했다 . 큰 상관은 없어도 거의매일 하이트진로의 상표를 단 트럭이나 , 표지판 , 광고판 , 그 앞을 지날 때는 공장 자체를 보니 친근할만도 하다 .

봉동읍내 만경강변 둥구나무에 다른 주민들의 소원 휘장과 나란히 걸린 하이트진로의 사업번창 휘장을 보고 나도 그네들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기도 했다 .

대기업의 생산공장이지만 우리집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친구네집 놀러가듯 가볼만한 마음이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고 견학 마치면 맥주 준다길래 시간이 많은 나와 나만큼 시간이 많은 동네 백수 친구들과 갔다 . 시음 맥주를 마시고 음주운전을 할 수 없어 나는 차를 두고 집에서부터 걸어갔다 .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어 만경강물은 벌써 얼었고 단단히 차려입고 나섰는데도 차마 가리지못한 코끝이 시렸다 . 그나마 열심히 걸으니 몸은 금방 더워졌다 . 자가용을 운전해서 다니기 시작한 후로 걸을 기회가 현저히 줄었는데 오랜만에 만경강을 걸어서 건너니 기분이 좋았다 .

기웃기웃 마을길을 걸어 공장 정문에 도착했다 . 뚜벅뚜벅 혼자 걸어서 산밑 한적한 시골마을 맥주공장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웃기다고 생각했다 . 정문을 지키는 공장 직원분도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

“ 혼자 오셨어요 ?” “ 아뇨 , 친구들도 곧 올 거예요 ” “ 그분들도 걸어오시나요 ?” “ 한 명은 걸어오고 한 명은 차로 올 거에요 ” ( 나중에 보니 둘 다 차로 왔다 .) 겨울은 비수기라 생산라인이 계속 돌지는 않는다고 한다 .

오늘 견학도 원래 오후시간이었는데 그때는 기계가 다 멈춘다고 해서 아침시간으로 변경했다 . 그래도 캔맥주 , 생맥주 라인은 쉬고 병맥주만 돌고 있었다 . 공정이 거의 컴퓨터로 자동화 , 기계화되어 엄청난 양을 생산해도 인간 노동자는 별로 일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

실제로 350 여명의 직원 중에 생산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은 100 명 정도이고 겨울에는 생산량이 적어 기계를 청소하고 보수하는 업무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우리는 거의 동시에 그럼 일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 꺾기 ( 할 일이 없다고 일할 시간을 고용주 마음대로 줄이는 아르바이트 업계의 용어 )’ 를 하는 건 아닌지 , 일이 없으면 노동자들의 급여에는 차이가 있는지 등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

다만 한창 바쁜 여름성수기처럼 잔업이 없으니 아쉬워들 한다고 . 바쁠 때 아르바이트생 필요하지 않냐고 , 저희 다 이 동네 사니까 올 수 있다고 공고나면 어디서 확인하냐고 물었더니 이미 계속 해오시던 분들이 매우 많단다 .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했다 .

견학을 마치고 시음장에서 어제 갓 만들었다는 맥주를 한 잔씩 받아 마셨다 . 나는 맥주맛을 몰라서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경치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꿀꺽꿀꺽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는 취해버렸다 .

우리는 방문객 신분을 잊고 마치 맥주집에 놀러온 사람들 마냥 기약없이 떠들고 놀다가 ‘ 시음프로그램 종료 ’ 를 알리는 안내에 머쓱하게 일어섰다 . 맥주맛 좀 아는 동행인이 말하기를 정말 맛이 다르고 맛있다고 한다 .

공장의 안내에 따르면 한 명이라도 일정만 맞으면 견학은 할 수 있다고 하니 지역의 기업을 둘러보고 신선한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은 분들은 한 번 다녀와도 좋겠다 . 우리를 배웅하던 분들이 ‘ 또 오세요 ’ 라고 했으니 부끄러워말고 또 가야지 . /바닥(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현장 사진

양조장행 釀造場行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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