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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9.07.01

바닥의 걸어서

우울한 직장인의 점심시간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9.07.01 17:10 조회 4,97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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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직장인의 점심시간 지난달에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이불 밖으로 몸을 일으켜 꺼내는 일 자체가 곤욕스러웠다 . 체육대회를 한 다음 날의 몸 , 밤새 두들겨 맞은 몸 같았다 .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지고 무거워진 몸을 가누기가 힘겨워 울면서 매일 아침을 맞이했다 . 그런 기분으로도 다행히 출근은 또 한다 . 일어나기 싫어서 마음속에 정해놓은 마지막 순간까지 누워있지만 그 시간을 놓칠까봐 불안해서 2~3 분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한다 .

[업로드] 바닥이미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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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 30 분이 되면 벌떡 일어나 고양이 화장실 먼저 치우고 밥그릇에 사료 채우고 세수하고 옷 입고 고양이 물그릇에 새 물을 채우고 후다닥 집을 나선다 . 얼굴에 로션 바르는 건 거의 매번 잊어버린다 . 몇 번은 세수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일어나자마자 나온 적도 있다 .

그런 시간이 한 달 반쯤 이어지다가 요즘에는 그나마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마음이 들 뿐 너무 괴롭고 힘들다는 생각은 덜하다 . 끼니 챙기는 것까지 신경 쓸 힘은 없어서 점심시간이면 매번 혼자 사무실 근처를 배회했다 .

빵집 , 국수집 , 햄버거집 앞을 지날 때마다 여기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 사람들과 함께 얼굴을 마주보며 점심을 먹는 일이 영 내키지 않아서 일단 밖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사람들이 가득한 식당에 들어갈 엄두 역시 나지 않았다 .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뭘 먹어도 맛이 없었다 .

어쩌다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올라 식당 앞까지 가보지만 이렇게 바쁜 시간에 혼자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는 게 식당에 폐를 끼치는 일만 같았다 . 그러다보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그냥 아무 곳으로나 걷게 된다 . 배고프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서 길을 걸으면서 먹었다 .

우울증이 찾아오지 않았던 시절의 나는 아침 6 시면 눈이 번쩍 떠지고 가뿐하게 몸을 일으켜 운동을 하거나 밥을 지어 도시락을 준비했다 . 저녁밥으로 무엇을 해먹을지 점심 때부터 고민하고 퇴근 후 한 시간 정도 요리해서 기분 좋은 식사를 한다 .

요즘의 나는 요리를 하거나 반찬을 잘 챙겨서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밥을 지어 먹는다 . 도시락도 싸서 점심시간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 말도 별로 없고 , 얼른 먹고 먼저 일어나기는 해도 혼자 옥상에 올라가거나 밖으로 뛰쳐나가지는 않는다 .

자기 전에 냉동식품이나 라면으로 배를 불려야 허전함이 채워지는 기분은 아직 남아있다 . 인스턴트 식품보다는 로컬푸드 식재료가 나을 듯해서 여름 감자를 쪄먹거나 , 당근이나 오이를 씹어먹거나 , 밥을 해서 간장이나 달걀후라이에 비벼먹는다 .

배고프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을 빨리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에 먹는 그런 식사다 . 먹고 나면 역시 후회한다 . 속은 더부룩하고 다음날 아침은 더 힘들어진다 . 식욕을 잃어서 전혀 먹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했지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

식욕을 잃는 것도 , 먹을 필요 없는 음식을 먹으며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것도 똑같이 슬픈 일이니까 . 방금도 냉동실에 얼려둔 식빵 두 쪽을 오븐에 구워 꿀을 발라 먹었다 . 배가 너무 부르다 . 오늘밤도 기분좋게 잠들지는 못할 것이다 .

잠을 자고나도 개운하지 않아서 그렇지 억지로 잠을 청하다보면 잠이 들기는 한다 .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으니 ‘ 진정한 ’ 우울증이 아닌 것만 같은데 새벽에 꼭 한 번씩 화장실 가느라고 , 고양이 밥 주느라고 깨다보니 수면의 질이 썩 높지는 않다 .

자기 전까지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는 날이 많으니 더 그럴 터다 . 아침에 그렇게 더 자고 싶으니 밤에 일찍 잠들면 좋으련만 잘 안 된다 .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라도 많은 직장인들이 밤에 바로 잠들지 못한다고 한다 . 종일 자기를 위해 쓴 시간이 없으니 뭐라도 해야 마음이 풀리는 거다 .

마음이 풀릴 것 같은 기분이겠지 , 그거라도 하는 심정 . 나는 주로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다 . 별로 읽을거리도 없는 트위터를 새로고침하면서 . 이제 자고 나면 또 일어나기 싫은 아침이 온다 . 출근하기 싫다 . 일하기 싫다 .

그래도 출근하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고 시작되면 곧 끝나니까 버티다보면 하루가 지나가겠지 .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내일이 오면 또 내일이 지나가니까 곧 휴일이 오겠지 . 회사가 지긋지긋해서 그만두고 싶다는 과거와는 다르다 . 그저 괴롭다 .

현장 사진

우울한 직장인의 점심시간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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