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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1.09.17

농촌 별곡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1.09.17 16:30 조회 4,6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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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방정이었나 . ‘ 올해는 날씨가 도와준 덕에 농사가 순조로운 편 ’ 이라 입방아를 찧었더랬다 . 그 다음부터 날이면 날마다 비가 쏟아지더니 햇빛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날이 보름 넘게 이어졌다 . 가을장마 , 결국 사달이 나는 모양이다 .

논배미에는 허옇게 말라비틀어진 벼이삭이 여기저기 고개를 떨구고 있다 . 두 달 넘는 장마 끝에 초유의 흉작을 낳은 지난해 ‘ 백수현상 ’ 의 데자뷔 . 그 때는 잇단 태풍으로 벼이삭이 말라 죽더니 이번엔 가을장마가 들이닥쳤다 .

올해는 태풍 ‘ 오마이스 ’ 딱 하나 생겼고 그나마 순하게 지난 편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 하지만 이게 웬일 , 그 뒤로도 비가 그치지 않는 것이다 . 다습한 환경이 되면 병충해가 생기게 마련이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돼 있다 .

아직 정확한 진단명을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 목도열병 ’ 이지 싶다 . 모가지를 균이 좀먹어 들어가면 이삭이 고스러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 사정이 이리 되고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거다 . 아무리 따져봐도 이 상황을 벗어날 길은 어차피 없었다 .

병충을 예방하거나 구제하려면 농약을 쳐야 하는데 망하면 망했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설령 방제를 한다고 치더라도 비가 그치지 않으니 농약을 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형국이었다 . 이래저래 이번 장마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

그래서 “ 농사는 결국 하늘에 달렸다 ” 는 게 그저 옛말이 아님을 절감한다 . 하여 순조롭기만 한 날씨에 취해 하늘을 노하게 한 일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 그런지도 모른다 . 그 때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 낮술판 ’ 을 벌인 게 화근이었는지도 .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저 벼이삭처럼 일이 잘 되어갈수록 더욱 삼가고 진중했어야 했는지도 .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이태를 내리 출수기에 딱 맞춰 집중호우를 내려 보낼 수 있는가 . 나아가 최근 3~4 년을 내리 흉작으로 내몰 수 있는가 말이다 .

그렇다면 덜된 농사꾼의 한심한 짓거리에 노했다기보다 하늘이 아예 미쳐버린 건 아닐까 . 그런 것 같다 . 본시 가을비라는 게 이따금 찾아와서는 ‘ 우산 속에 이슬 맺히게 하는 ’ 것 아니던가 . 그런데 보름이 넘도록 사정없이 내리치는 이것에 ‘ 가을비 ’ 라는 낭만스런 이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미친 날씨요 , 재앙이라 불러 마땅하다 . “ 이래 가지고는 앞으로 농사 지어먹기 힘들지 ...” 늙은 농부가 내쉬는 한숨 속에 체념의 그림자가 너울댄다 . 날씨가 미쳐버렸으니 어찌 농사를 종잡을 수 있겠는가 . 이제 흉작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일 뿐더러 갈수록 상황이 더 나빠질 거란 얘기다 .

미친 날씨는 다름 아닌 ‘ 기후위기 ’ 의 다른 이름이다 . 유엔 산하 범정부간협의체 (IPCC) 가 얼마 전 발표한 6 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가 눈길을 끌고 있다 . 요컨대 지구온난화 상황을 돌이킬 수 없는 기온 1.5 도 상승 시점이 10 년 더 당겨졌다는 것이다 .

더불어 ‘ 인류멸종 ’ 이 머지않았다는 몇몇 비관적 시나리오도 제기됐다 . 워낙 끔찍한 상황이라 ‘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 의문을 품거나 ‘ 무슨 수가 있을 거야 ’ 막연한 희망에 기대는 듯하다 . 아니 너무 끔찍한 일이라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

어쩌면 ‘ 흉작 ’ 따위나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 아니 그 흉작이 극단으로 치달아 뜨거워서가 아니라 굶어서 죽는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지 . 그러니 이제라도 뭐든 해야 하지 않겠나 . /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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