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지나갔지만 대가는 입이 쓰다 제 9 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면서 하루아침에 더위가 싹 가셨다 . 공기가 선선해지고 가을로 접어든 건 몹시 반가운 일이지만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 바비 - 마이삭 - 하이선으로 이어진 세 차례 초강력태풍으로 제주와 남동 해안지역은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
두 달 가까이 여기저기 물폭탄 떨어뜨린 장마는 또 얼마나 많은 수재민과 경제적 피해를 안겼던가 . 그나마 이 고장은 장마와 태풍 모두 비켜가는 바람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아 안도하는 분위기다 . 그런데 사실은 이 고장에도 한 발 늦게 피해가 찾아왔다 . 백수현상 . 실직자가 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
白穗 , 비를 동반한 강한 바람이 분 뒤에 고온 건조한 강한 바람이 통과하면서 출수 직후의 벼 이삭이 하얗게 말라 죽는 현상이다 . 오랜 장마로 수정이 부진했던 점도 한 몫 한 것 같다 . 온 들녘이 희끗희끗 심상치가 않다 . 논배미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흉작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가슴이 미어진다 . 흔히들 “ 농사의 팔할은 하늘에 달렸다 ” 고 한다 . 그저 해보는 빈말로 들리던 이 얘기가 가슴 절절이 다가오는 요즘이다 . 그런데 이 상황은 하늘이 가끔 부리는 ‘ 심술 ’ 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자연생태를 깨뜨렸고 , 지금 겪고 있는 자연재해는 그에 따른 하늘의 ‘ 복수 ’ 라는 얘기다 . 기후위기가 온갖 재난을 몰고 오더니 이제는 식량의 위기 , 농업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 자업자득인 걸 누굴 탓하랴 .
그런 안타까움과 마음 졸임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어디 한 둘이겠느냐마는 그 가운데서도 ‘ 공장식 축산 ’ 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늘 껄끄럽기만 하다 . 더욱이 초대형 돼지농장이 바로 코앞에 자리 잡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 비봉 돼지농장 .
17 년 동안 1 만 마리 넘게 돼지를 키워왔고 , 비오는 밤을 틈타 축산폐수를 몰래 버리다 들켜 가동을 멈췄다 . 가동중단 상태가 이제 10 년 가깝다 . 그 농장을 축산재벌 이지바이오 계열사가 사들여 재가동을 꾀하고 있다 . 17 년 동안 주민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
머리가 아플 만큼 지독한 악취에 들끓는 파리와 모기 , 농장 옆으로 지나는 천호천은 축산폐수로 검게 죽어버렸고 , 지하수까지 오염돼 생활용수난을 겪어야 했다 . 냄새 때문에 집이고 논밭이고 매매가 뚝 끊겼고 괜찮은 입지 때문에 몰려들던 귀농 · 귀촌인도 마찬가지다 .
얼마 안 되는 어르신들마저 세상을 뜨고 나면 인근 마을들은 그야말로 소멸의 길을 걷게 될 운명이다 . 그러니 주민들은 목숨 걸고 재가동을 반대해왔고 , 완주군 또한 관계법령에 따라 가축사육업 불허가 처분을 내린 것이다 . 그러나 업체는 순리를 따르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해 심리가 한창 진행 중이다 .
재판부가 최근 피해발생 경위와 예상되는 상황을 석명할 것을 요구해와 집단인터뷰와 조사활동을 벌이며 고통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사실 소송이야 재판부의 판결에 달려 있지만 주민들로서는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그 지긋지긋한 고통이 재현되는 걸 결코 상상할 수 없다 .
한결같은 목소리 “17 년이면 할 만큼 했다 !” 다행히 업체와 주민이 상생하는 길이 열려 있다 . 자자체인 완주군에 농장부지를 매각하는 게 그것이다 . 매입가에 그 동안 들인 비용과 적절한 보상을 더한 수준에서 매매가 이루어진다면 업체로서도 밑지는 일이 아니다 .
주민들 또한 ‘ 돼지똥 ’ 에서 영원히 벗어나니 그보다 더한 다행이 없다 . 업체가 매각을 거부한다 해도 다른 방법이 있다 . ‘ 이전명령 ’ 이라는 행정명령을 통해 농장 부지를 사실상 수용하는 제도가 관계법령에 명시돼 있다 . 시행과정의 실무적 어려움을 들어 망설일 일이 아니다 .
정말이지 한시가 급하다 . /차남호(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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