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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05.27

농촌별곡

주뻐야소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05.27 15:33 조회 4,0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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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뻐야소 낮에는 뻐꾸기 , 밤에는 소쩍새라 . ‘ 뻐꾹 뻐꾹 봄이가네 ~ 뻐꾹 뻐꾹 여름 오네 ~’ 계절이 바뀌는 소리 . “ 솥 / 적 / 다 ” 고 풍년을 예고하는 애절한 울음 . 어쨌거나 벼농사가 시작됐다는 신호 되시겠다 . 안 그래도 우리는 5 월 첫머리를 모농사로 수놓았다 .

볍씨를 담가 싹을 틔워 파종한 모판을 못자리에 앉히는 한 주 남짓한 두렛일이 끝난 것이다 . 뜻하지 않은 어려움으로 애를 먹기도 했지만 마무리는 아름다웠다 . 못자리에는 지금 앙증맞은 볏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 볍씨 담그는 공정부터 문제가 생겼다 .

소금물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염수선 작업은 가뿐했다 . 처음 해보는 새내기 일꾼들에게는 날계란을 띄워 염도를 맞추는 과정부터가 신기한 경험이었을 터 . 막걸리 잔으로 목을 추겨가며 여유잡고 그 다음 열탕소독을 하려는데 ... 아뿔싸 ! 소독기에 딸린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

장정 대 여섯이 힘들게 옮겨온 기계인데 워낙 낡은 탓으로 보였다 . 삭아서 물이 새는 파이프를 갈아 끼우고 , 저마다 경험과 기술을 짜내봤지만 결국 보일러 작동에 실패 . 밤 9 시가 넘은 시간이라 열탕소독 공정을 건너뛰고 발아기를 돌릴 수밖에 .

다행히 볍씨는 알맞게 촉이 텄고 사흘 뒤에는 모판에 볍씨를 넣는 작업이 이어졌다 . 전기로 돌아가는 파종기계를 쓰는 공정이다 . 7~8 명이면 너끈히 작업할 수 있는데 열 댓이 모였다 . 문제는 일관 공정을 제어하는 체인에 문제가 생겨 자꾸만 가동이 멈추는 것이다 .

그런 탓에 작업시간이 늘어질 수밖에 없었고 저녁 7 시를 넘겨서야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 2 천 판이 넘는 숫자도 숫자려니와 체력소모가 가중돼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메벼와 찰벼가 섞이는 사고가 터져 찰벼모판 수를 줄여야 했다 .

그렇게 사나흘을 숙성하여 싹을 돋은 뒤 못자리에 앉히는 작업에 들어갔다 . 5 월 1 일 , 노동절이었다 . 직장인들이 쉬는 날이지만 ‘ 일꾼 ’ 을 모으자면 작업날짜로 휴일을 골라야 하니 해마다 어쩔 수가 없다 . 그나마 올해는 일정을 당겨 ‘ 어린이날 ’ 을 챙겨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으니 .

어쨌거나 그 덕분인지 정말 많은 일꾼이 모였다 . 연인원 60 명이나 되는 , < 벼농사두레 > 공동작업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다 . 올해는 특히 지역사회와 함께 하려는 고산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의 참여로 더욱 뜻깊은 작업이 되었다 .

“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 좀 힘들다 싶으면 얼른 다른 분과 교대하세요 !” 사람이 넘쳐나니 여유도 넘쳐난다 . 누군가 해찰을 해도 , 몇몇이 모정 마룻바닥에서 낮잠을 청해도 그러려니 . 모판을 이어 나르는 공정에서 흐름이 막혀도 느긋하다 .

짧은 노동에 넉넉한 휴식 , 한껏 늑장을 부려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 구슬땀 흘린 뒤 먹는 점심은 꿀맛 . 국수가락을 미어 터지도록 말아 넣고도 모자라 썩썩 밥을 비빈다 . 여유가 넘치니 ‘ 뉴페이스 ’ 소개시간도 진행한다 . 그러고도 4 시가 안 돼 작업이 모두 끝났다 . 이 또한 역대급이다 .

뒤풀이가 더없이 흥에 겨웠던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 요즘 들어 ‘ 두레 ’ 란 무엇인지 자꾸만 되짚게 된다 . ‘ 깜냥껏 힘을 모아 더불어 사는 세계 ’ 아닐까 . 안 그래도 살아내기 팍팍한 시대다 . 지금 , 여기에서라도 ‘ 사람 사는 것처럼 ’ 살았으면 싶다 .

짐짓 ‘ 나 ’ 를 내세우지 않고 , 한사코 야박하게 따지지 않고 , 유장한 흐름에 함께 몸을 맡기면서 . /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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