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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08.06

농촌별곡

시름도 겨우면 흥이 나나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08.06 12:39 조회 3,99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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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 도 겨우면 흥이 나나 한 줄기 소나기가 시원하게 쏟아지더니 따갑게 내리쬐던 땡볕이 잠시 누그러졌다 . 지난 한 주일 어간의 날씨가 이 모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 열대우림 지역에서 나타나는 스콜 (squall) 과 비슷한 현상이다 . 아니 그냥 스콜이라 해도 틀림이 없겠다 .

오랜 가뭄 뒤에 늦게 찾아온 장마전선이 여느 해보다 오래도록 한반도 상공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 그래도 이 땅의 기후가 이미 아열대로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이 시원한 소나기가 그저 반갑지만은 않다 .

가뭄이 오래 이어지던 지난 6 월 하순 , 어쩔 수 없이 < 가뭄 > 이라는 노래가 입안을 맴돌았었다 . (< 농촌별곡 > 7 월호 ) 어서 빨리 장마가 찾아와 이 가뭄을 씻어주기를 학수고대하던 나날 .

그런데 “ 이 가뭄 언제나 끝나 무슨 장마 또 지려나 ” 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큰 장마가 휩쓸고 지나갔다 . 제주에서 강원도까지 반도 남부를 여기저기 할퀴고 지나던 장마전선이 끝내 이 고장에도 들이친 것 . 하룻밤 사이 3 백 미리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

산간 계곡에 빗물이 넘치고 산사태가 일어나 이재민까지 나왔다 . 보통은 논둑이 무너지고 물이 차는 정도였던 우리 동네도 여기저기 넘어가고 무너지는 피해가 속출했다 . 급기야 완주군 전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

농수로 둑이 무너지는 바람에 내가 짓는 논배미도 두어 곳에 토사가 덮치는 피해를 입었다 . 귀농해서 농사지어 온 지 15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 저수지 둑이 무너져 물을 대지 못하는 와중에 가뭄까지 겹쳐 열흘 가까이 김을 매는 생고생을 했더랬다 .

그 고생 끝나자마자 이번엔 장맛비에 세차게 얻어맞고 나니 거의 ‘ 멘붕 ’ 상황 . 장마가 소강상태로 잦아든 뒤에도 논배미에 쌓아둔 모판을 거둬들이다가 트럭이 진창에 빠지는 바람에 트랙터를 불러 몇 시간 사투 끝에 겨우 꺼내는 따위의 크고 작은 사건이 뒤를 이었다 .

이렇듯 온갖 고난으로 점철됐던 올 여름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 한낮 기온이 35 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나날 . 소나기가 내려도 그때뿐 , 습도가 오르면서 날씨는 금세 후덥지근하다 . 잠을 이룰 수 없는 열대야도 벌써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

그나마 지난 몇 해 동안 겪어온 터라 그만큼 견디는 힘도 늘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 그런 가운데서도 아직 에어컨을 들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 자신이 대견하다 .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

기후위기가 가속되고 , 이상기후의 피해가 갈수록 극심해지는 가운데서도 인류는 , 특히 권력을 쥔 세력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 그러니 내년 여름에는 올해보다 더욱 혹독한 가뭄과 극한폭우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란 생각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

어제는 중간물떼기에 들어간 지 보름 만에 논배미를 두루 살펴봤다 . 짝 금이 가 있어야 할 논배미에 물이 차 있거나 젖어 있다 . 논바닥이 말라야 뿌리에 산소가 공급되고 헛새끼치기를 막을 수 있는데 , 장마전선이 수시로 빗줄기를 쏟아부으니 마를 틈이 없는 까닭이다 . 그렇다고 농사 망칠 건 아니다 .

머잖아 벼에 이삭이 생기는데 그때는 다시 물을 흠씬 대줘야 하니 사실 별것도 아니다 . 고난이 이어지더라도 낙관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 노래 < 가뭄 > 마지막 대목은 “ 흥흥 흥타령일세 시름도 겨우면 흥이 나나 ” 로 끝을 맺고 있다 .

그 곡을 쓴 김민기 선생이 며칠 전 이 세상을 뜨셨다 . 그의 노래를 무척 사랑했고 , 그 삶을 배우고 싶었던 사람으로서 이제 편히 쉬시기를 빈다 . /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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