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먹고 알 먹고 남현이의 청년일기 너멍굴 건설의 감리를 맡은 감리사 옥선은 너멍굴 농업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노구임에도 활동적이며, 고운 목소리와 꾀를 두루 갖췄다. 봄이 오자 옥선은 한해 농사를 시작하였고, 매일 한 가지씩 그녀에게 가르침을 얻고 있다.
그녀가 가장 역점을 두는 농법은 ‘힘들면 안 돼 농법’이다. 그녀를 멀리서 보고 있으면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다. 가만히 쪼그려 앉아있다. 그 모습이 이상하여 다가가보면, 그녀는 손을 아주 느리지만 리듬감 있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감동한 것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다.
배가 고프면 시간에 개의치 않고 준비한 도시락을 까먹는다. 또한 물이 부족하면 나에게 와 물을 청하고 우리 집 마당에서 같이 앉아 쉬기 일쑤이다.
얼핏 보면 그녀는 농업인중 가장 긴 시간의 노동을 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땀을 뻘뻘 흘리는 나와 비교하면 그녀는 노는 것인지 일하는 것인지 구분 없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광대한 농토는 항시 기름지고 풍요로우니, ‘힘들면 안 돼 농법’은 그녀가 준 큰 가르침들 중 첫 번째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녀는 쉼 없는 관찰자였다. 바라보는 눈빛과 움직이는 손끝은 항상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옥선이 참깨를 심고 며칠 뒤, 깨밭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참깨 씨를 주며, 끊임없이 땅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했다. “새가 다 먹었구만.” 믿을 수 없다. 내 시력이 좌우 공히 1.5인데, 나의 눈에도 안 보이는 새 발자국이 그녀에겐 보인다고 했다. 그리곤 손으로 흙을 퍼 만져본다. 참깨가 없단다. 맙소사.
저 거친 손에서 흙 속의 참깨 알이 느껴진단 말인가. 비결을 묻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계속 보면 알지.” 우문현답이다.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면밀히 보면 되는 것이구나. 그 가르침 이후 하루에 한 번 작물들의 생김과 산과 들의 색을 바라보고 있다.
아주 신기한 것은 계속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그 모습을 볼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정말로 생긴다는 거다. 꾀란 장정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는 옥선의 정수이다. 어느 날은 나와 그늘에서 물을 나눠먹고 있었는데, 참깨와 들깨를 같이 심는 그녀의 새로운 구상을 듣게 되었다.
참깨를 두둑에 이렇게 심고, 한 달 뒤에 고랑에 들깨를 심어야겠다는 거다. 참깨는 건조한 것을 좋아하고, 들깨는 습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참깨는 길게 위로 자라나니, 뒤늦게 자라는 들깨의 햇빛을 탐하지 않는다.
엄청난 땅의 효율과 면밀하게 들어맞는 작물의 생육주기를 생각하며 감동의 눈빛과 함께 물었다. “원래 이렇게 심으셨어요?” 옥선은 대답했다. “아니, 밭은 하나고, 꿩 먹고 알 먹고 할려구!” 심지어 그 혁신적 구상은 올해 그녀가 처음 시도하는 농법이다.
나이는 경직을 덤으로 준다고 믿었던 나에게 그녀의 도전과 창의성은 충격 그 자체이다. 나이가 들면 잊혀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비웃는 옥선은 그 순간 나의 선생이 되었다. 새로 배우는 것이 금세 무용해지는 세상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살라고 말하는 명사들의 강연을 들으면, 우리를 다 경쟁의 늪에 빠뜨려 죽이려한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가끔 읍내에 나가는 것을 빼곤 농사만 지은 할머니에게서 변화에 대처하는 의연함과 도전의 용맹함을 본다.
물론 명사가 말하는 변화와 도전과는 조금은 다른 성질의 것이지만, 옥선은 새 시대의 인재가 틀림없다. 변화네 혁신이네 나불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너멍굴 진씨는 새 시대의 시대정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