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귀농을 장려한지 오래이나 , 신이 미령하여 아직 뜻을 이루지 못 하였습니다 . 신은 본래 서울에서 먹물로 소일하던 자입니다 . 그러던 올해 초 , 삼례로 내려와 고산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 그러나 전답과 가옥이 떨어져 있으매 , 한 해 농사를 말아먹음이 자명하였지요 .
이에 내년 농사를 위해 고산으로 세간을 옮기고 , 뜻을 적어 면민께 올립니다 . 농사의 기본은 문전옥답이라 들었습니다 . 그러나 신의 농막은 전답과 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
천성이 게으르고 , 집안이 빈한하여 전답을 오가며 경작하던 중 “ 아 이것은 아니 되는구나 ” 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 이에 농토가 있는 어느 곳으로 든 이주할 뜻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 뜻을 세우고 , 출정을 준비하였습니다 . 신에게는 원래 충복이 셋이 있었사옵니다 .
서울서 감언이설로 속인 후배님이 하나요 . 후일 멧돼지를 물어죽일 천하의 명장똥개 , 밭거름 씨가 둘이요 . 두 발로 굉음을 내며 달리던 오토바이 , 적토마 씨가 셋입니다 .
그런데 감언이설의 민낯이 들어나 후배님이 떠나시옵고 , 음주운전을 종용하던 간신 적토마를 처단하니 , 신의 가신은 오직 명장똥개 , 밭거름씨 뿐이었습니다 . 그러나 최근 새로운 충신 , 네 발 달린 라보트럭 , 걸음마 1 호를 영입하였지요 .
그리하여 2016 년 10 월 , 밭거름을 좌장으로 하고 , 걸음마를 우장으로 하는 고산원정대를 꾸릴 수 있었습니다 . 원정대가 꾸려지니 , 귀인과 옥토가 나타났습니다 . 뜻을 세우고 원정대를 조직하였으나 , 뾰족한 수가 없던 차에 스승이신 종란 선생님께서 집을 소개해주셨습니다 .
곧장 산을 넘어 그 집으로 달려가니 , 전화가 터지지 않고 , 주변에 민가와 가로등이 없는 무릉도원이 나타났습니다 . 그 무릉도원의 형세를 보니 , 뒤에 돌산이 자리를 잡고 , 밑으로 논이 펼쳐진 골짜기로 천하제일의 명당이었습니다 .
거기에 혹자는 ‘ 그 자리가 습하다 .’ ‘ 민가가 없어 외롭다 .’ 라는 부언을 하였습니다 . 그러나 신은 현혹되지 아니하고 출사의 뜻을 밝혀 , 10 월 21 일 목요일 . 일단 짐부터 옮겨놓는데 성공하였지요 . 고산면 어우리에 자리잡은 진남현의 집. 대나무 울타리에 직접 쓴 문패에 걸어 두었다.
쌀쌀한 가을 방안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고산에 잡은 새 터전은 도전의 땅입니다 . 불이 역류하고 , 연기가 줄줄 새는 구들이 놓여있어 , 구들의 원리를 공부할 동력을 제공해주었지요 .
밤이면 고라니가 울어대고 , 멧돼지의 흔적이 보이니 , 좌장 거름이와 폭죽을 들고 응전의 태세를 갖추지요 . 별과 달이 맑아 밤하늘을 보며 탁주 한 잔을 걸칠 수 있지요 . 그 뿐입니까 ? 곳곳에 나무와 풀이 우거진 휴경지가 널려있으니 , 두 손에 오직 의지와 혈기뿐인 저에게 안성맞춤의 옥토입니다 .
신은 석유를 쓰지 않는 농법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 농사지어 쥐똥만큼의 소득이 나오는데 그것을 이놈저놈과 나눌 아량이 저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 그러자면 기계를 쓰지 않아야하는데 , 그것은 아직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
그러나 팔다리가 성한 몸뚱이가 있으니 힘닿는 곳까지 밀어붙여볼 생각입니다 . 나라를 운영하는 데에 아주머니 두 분이면 충분하니 , 골짜기 하나를 경작하는데 청년 하나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진남현(올해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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