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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1.05.11

나카무라의 비봉일기 10

이웃집 집된장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1.05.11 15:18 조회 4,68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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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사월 모일 날씨 흐리고 한때 비 고사리를 따러 산으로 올라갔다 .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엎드려 눈높이를 내렸더니 보이기 시작했다 . 고사리는 은색 띤 코트를 걸친 사람이 약속한 연인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서있는 모습과 같다 . 하나를 따서 둘러보니 또 하나가 나무 뒤로 보인다 .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곳인데 잘 보고 있으면 작은 짐승이나 벌레들이 사는 세계에 온 기분이 들었다 . 웅크린 채 나무사이를 올라갔다 . 열중해서 땄다가 문득 일어서면 낮은 나무에 둘려 싸여 내가 온 길을 몰랐다 . “ 난 어떻게 내려 ?” 친구 소리가 들려 함께 웃었다 .

나카무라미코 그림
나카무라미코 그림

어릴 적 휴일에 아버지가 고사리를 따러 간다고 하시면 너무 우울했다 . 고사리 반찬은 어린 입에 안 맞아 맥이 빠졌다 . 다른 사람들이 이미 따 간 길을 더 위로 올라가야 해서 싫고 , 아침에 방송되는 티브이 프로를 보고 싶기도 했다 . 부루퉁한 얼굴로 아버지 뒤를 따라간 날이 생각났다 .

지금은 공기 좋은 산에서 친구와 산나물을 따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 고사리 맛도 안다 . 아버지는 이 즐거움을 가르치고 싶으셨을까 … 비가 오면 고사리는 모락모락 땅에서 나온다고 한다 . 은색 코트가 젖어 빛날 것 같다 . 사월 모일 날씨 맑음 집 바로 앞에 벤치가 있다 .

막대기를 세워 양산을 묶었다 . 끈으로는 미끄러워 잘되지 않아 세탁소 옷걸이를 펴서 돌려 붙였다 . 양산 아래서 커피를 마셨다 . 기분이 좋아 책도 가져 가 읽었다 . 개가 옆으로 와 두그르르 누워 있었다 . 녹음 짙어지는 사월에 보물 같은 하루를 만끽했다 .

사월 모일 날씨 흐리고 갬 근처에 사시는 분에게서 집된장을 받았다 . 마트에서 사 온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 맛있는 된장국을 먹으면 머릿속 뇌 중심부에 천천히 스며드는 편안함을 느낀다 . 그리운 어머니 얼굴도 왠지 스쳐간다 . 그 집을 찾았다 .

장독대에 늘어선 간장이나 된장은 항아리 속에서 춘하추동 바람을 몇 번 받아 잠들어 있는 듯했다 . 손질을 끝나고 마지막으로 호스를 끌어당겨 항아리 바깥을 씻어내어 수건으로 닦으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 장독대에 계시는 철륭신에게 나도 감사의 마음을 올렸다 .

/한국생활 10년차 나카무라 미코는 2020년 5월 한국인 남편과 비봉면에 정착했습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시민교류를 추진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며, 비봉에서는 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현장 사진

이웃집 집된장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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