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마님과 머슴에게 복덩이 ( 복숭아) 가 찾아왔당게 용진 산들농원 김도자-정영만 부부 복숭아의 계절이다 . 초복에는 삼계탕을 먹고 중복 말복에는 복숭아를 먹어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랬다고 하니 , 지금 ! 바로 이 순간 복숭아를 먹어야 할 때다 .
예전부터 용진 지암리는 각시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가 오면 땅이 질퍽했다고 한다 . 배수가 잘되고 보드라운 사양토 토질이어서 지암리에서 나는 과실들은 당도가 높다 . 지암리에 자리 잡은 산들농원을 찾아 갔다 .
3000 여평의 지암리 좋은 땅에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고 나무마다 아이 머리만한 복숭아가 탐스럽게 달려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 농원 가운데에 자리 잡은 원두막으로 주인내외를 만나러 갔다 . 내 소개를 하기도 전에 , 다가오는 나에게 들어와서 앉으라고 한다 .
그리고는 복숭아 서너 개를 무조건 깎아 주며 일단 먹으라고 하신다 . 이것이 시골인심인가 . 아니면 이 주인내외가 유난히 인심이 좋은 건가 . 얼떨결에 탐스러운 복숭아를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 아삭거리는가 싶더니 새콤한 맛이 올라오고 오래 씹으니 달큰한 맛이 올라온다 .
또 다른 걸 집어 입에 넣는다 . 씹으니 과즙이 넘쳐흐르고 속이 뻥 뚫리게 달다 .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먹고야 말았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 TV 에 나오는 리포터마냥 맛있다는 걸 온 몸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실성한 사람마냥 웃기만 했다 . 참 좋은 맛이다 .
앉아서 복숭아를 먹고 있는 사이에도 복숭아 사러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 찾아오는 이들을 무조건 원두막으로 앉히는 역할은 정영만 (61 세 ) 씨이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접하는 이는 그의 부인 김도자 (57 세 ) 씨이다 .
“ 로컬푸드 직매장에도 판매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들은 우리 농원으로 직접 찾아와서 사가요 . 기스 ( 흠집 ) 난거 덤으로 내가 챙겨주니까 . 저 아저씨는 요 앞에 도로 공사하는 분인데 여름 내내 복숭아를 사가네 .
뙤약볕에서 일해서 번 돈 우리 집에서 다 쓰고 가서 어쩐디야 ” 김도자씨가 복숭아를 수확하던 중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탐스러운 복숭아.
백바지 멋쟁이와 아가씨가 만나 농사를 짓다 16 년 전 복숭아과수원을 시작하면서 복숭아 수확하는 6 월부터 8 월 중순경 까지 이곳 원두막에는 복숭아도 가득하고 사람들도 가득하다 . 김도자씨는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하신 분이다 .
용진면 부녀회 총무로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고 농업기술관련 교육을 받을 때도 늘 웃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운을 불어 놓는 존재랄까 . “ 우리 아저씨는 사람 많은 곳에 나가는 거 싫어하는데 나는 좋아하거든요 . 그래서 바깥활동을 내가 더 많이 해요 .
아저씨가 내조를 해주니까 마음 편히 돌아다니는 거지 . 내 이름이 김도자 잖아요 . 복숭아 도 ( 桃 ) 가 아니고 길 도 ( 道 ) 에요 . 그래서 내가 평생 일이 많나봐 . 그래도 여태껏 잘 살았어요 . 이렇게 살아온 비결은 오로지 긍정적인 마음 때문이에요 .” 김도자씨의 고향은 진안 부귀면 .
직장생활 때문에 익산에서 자취를 하다가 26 살에 31 살 노총각 정영만씨와 선을 봐서 용진 지암리로 시집을 왔다 . 둘 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 심지어 정영만씨는 그 당시 잘 다려입는 백바지와 백구두를 즐겨 신었다고 하니 이들 신혼부부가 시골에서 뭘 해먹고 살아야 했을까 .
정영만씨는 멋쟁이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 “ 그 전에는 양복쟁이였어요 . 양복 기술자 . 기성복 시대가 되면서 일이 없어지기 시작한 거지 . 그때는 잘 나가는 멋쟁이였지 . 대한민국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이 많이 놀러 다녔지 . 그러느라 농촌 일을 늦게 시작한 편이지 .
결혼해서 식구들 먹여살리느라고 시작했으니까 .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이 있었으니까 무작정 농사를 시작한거지 . 처음에 참외농사를 지었는데 , 이 놈의 것을 팔 줄을 알아야 말이지 . 그래서 집사람이랑 참외 들고 고산장에 가서 좌판을 벌렸는데 , ‘ 참외 사시오 ’ 라는 말이 안 나오네 .
집사람이랑 농사도 처음 짓고 이런 것을 팔아봤어야지 . 하나도 못 팔고 있는데 해는 져가고 그래서 고놈을 다시 가지고 모래내 시장에 갔는데 거기서도 말을 못하다가 어렵게 팔고 , 그렇게 시작되었지 .” 열심히 살다보면 답이 나오는 법 어느 세월에 내 집 짓고 살까 막막하기도 했다고 한다 .
김도자씨는 시골이 좋아 이곳으로 시집오긴 했지만 농사가 너무 힘들어 7 년만 해보고 완주를 떠나려는 마음도 먹었다고 한다 . “ 막상 농사를 시작하니까 너무 힘든거에요 . 참외도 하고 , 주키니호박 , 애호박 , 토마토 , 풋고추 , 오이도 해보고 진짜 안해본게 없어요 .
근데 해보니까 수입이 별로 안나오더라구요 . 그래서 아이들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살다가 나가려고도 했어요 . 너무 힘드니까 . 근데 그게 마음먹은데로 안되더구만요 . 살다보니까 . 그래서 눌러서 살다보니까 지금까지 살고 있는거에요 . 근데 결과적으로 안나가길 정말 잘한거 같아요 .
그때 나갔으면 후회했을 뻔 했어요 . 힘든 시절에 아는 형님의 권유로 복숭아를 심었죠 . 복숭아 재배 하면서 패가 잘 풀려서 집까지 지어서 살잖아요 . 그 전에는 우리 집도 없었어요 . 게다가 장류사업까지 하게 되었어요 .
복숭아가 복덩이죠 .” 원두막 대들보에는 해마다 복숭아 수확한 날자를 적어 놓았다. 원두막으로 찾아온 손님들. 손님 스스로 복숭아를 깎아 먹는다. 복숭아 포장 중. 인생은 답이 없는 법 . 일단은 살아봐야 하는 것 .
이들 부부는 그저 열심히 살아보는 것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복덩이라고 부르는 복숭아와 함께 하고 있다 . 황도는 비교적 늦게 수확한다 . 8 월 중순경까지 수확을 하고 나 면 나무들에게 열매 따게 해줘서 고맙다고 감사비료를 주고 내년을 위해 10 월경에는 퇴비를 준다 . 일은 끝나지 않는다 .
이들 부부는 노후를 위해 몇 해 전 부터 장류사업을 시작했다 . 3000 평 땅에 콩을 재배하고 있다 . 가을이 되면 콩 베어서 타작하고 가마솥에 삶아 메주를 만든다 . 이것으로 청국장 , 된장 , 고추장 , 간장 등을 만들어 로컬푸드직매장에 내놓고 있다 .
김도자 , 정영만 부부가 어렵던 시절 복숭아가 그들에게 왔듯이 , 낭만적인 노후를 위해 그들에게 콩이 찾아왔다 .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김도자씨는 자신 스스로를 ‘ 행복마님 ’ 이라고 부른다 . 행복마님 곁에는 한때 백바지와 백구두를 즐기던 우직한 머슴도 늘 함께 한다 .
여느 부부가 그렇듯 찌그락 짜그락 할 때가 더 많지만 원두막에서 호흡을 맞추며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꽤 보기에 좋다 . 백도 , 황도 , 천도 . 복숭아를 굳이 나누자면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고 또 이 세가지에서 개량된 종들이 숱하게 많다 .
산들농원에서도 열 가지가 넘는 종들이 재배되고 있다 . 김도자씨에게 물었다 . 복숭아 중의 최고의 품종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 우문현답이라 했던가 . “ 그런게 어딨어요 .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이 최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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