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옥림 할머니와 그의 친구 팽나무 아래 두 여자 이야기 용진면 구억리를 끼고 도는 소양천 제방도로는 아름다운 길이다 . 출근길에 바라보는 용진 방향의 풍경은 왼편의 전주 시가지와 오른편의 구억리 그리고 그 뒤를 감싸고 있는 도토리나무 군락이 예쁜 야트막한 뒷산이 묘하게 대조적이다 .
해질 무렵 접어드는 퇴근길의 전주방향 풍경은 좀 더 근사하다 . 멀리 진안고원의 높은 산들이 아득하고 아침에 봤던 풍경들이 서로 다른 편에서 조명등을 밝히고 소양천을 사이에 둔 채로 평화롭게 전개된다 .
도로와 도로 중간에 있는 사잇길이어서 이 길로 접어들면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는 느낌이 드는 이 길은 되도록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의 길이었으면 좋겠다 . 그 길 중간쯤에 있는 아름드리 팽나무 그늘 아래 날마다 같은 시간에 앉아 있는 두 여성의 존재를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다 .
길 가 풍경에 눈길을 빼앗겼을 수도 있고 다른 상념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 어느 날 팽나무 아래 정자마루에 앉아 있는 두 여성이 눈에 들어왔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는데도 그 시간이면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송옥림 할머니 (81 세 ) 가 여기 팽나무 아래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삼년 전 부터다 . 할머니의 집은 삼례 하리에 있는데 삼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 큰딸이 살고 있는 이곳 구억리 딸네 집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
답답한 마음에 산책 삼아 나선 길이 습관이 됐고 매일 오전 시간을 이곳 길가 정자에서 하늘과 강과 새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된 것이다 . 팽나무 그늘 아래 송옥림 할머니. 그의 곁에는 늘 요양보호사 김씨 아주머니가 함께 앉아 있다.
“ 여기 팽나무 아래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삼년 전 부터야 . 이 동네 구억리에서 삼년을 살고 있네 . 원래 집은 삼례 하리야 .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치료받고 큰 딸이 어머니 집에 혼자 두기 안 좋다고 자기 사는 이 동네로 나를 데리고 온 거지 . 우리 사위가 사람 꼴을 잘 봐 .
우리 큰 딸 집에 4 대가 같이 살아 . 나 , 딸 , 사위 , 손자 , 손녀딸 , 손주사위 , 증손주셋 , 아홉 식구에 개 두 마리 새 네 마리 , 왔다 갔다 하는 고양이들 . 요양보호사까지 . 대식구야 .
왔다 갔다 하는 요양보호사도 식구지 .” 할머니 곁에는 늘 요양보호사 김씨 아주머니가 함께 앉아 있다 . 산책 나온 사람들이나 마을 어르신들은 매일 같이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는 그녀들에게 혹시 모녀지간이냐고 묻곤 했다고 한다 . 나도 처음엔 그녀들이 모녀간이나 고부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
나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 두 분은 어떤 사이죠 ? “ 차라리 할머니 두 세분이 앉아 있으면 그냥 동네 어르신이 나와서 놀고 계시나보다 생각하는데 딱 봐도 나는 젊잖아요 . 젊은 사람이 할머니랑 같이 앉아 있으니까 다들 궁금한가봐요 .
젊은 아즈매가 왜 저렇게 할 일 없이 매일 할머니랑 이 곳에 앉아 있나 하고요 . 우리는 그런 생각 안 했는데 . 다른 어르신들도 만나고 있지만 우리 엄마는 매일 보는 거여서 각별해요 . 지금은 정 들어서 내가 안 오는 날에는 보고 싶고 걱정되고 그래요 .
엄마가 모정 나오는 시간을 아니까 나 없이 혼자 나오면 걱정되기도 하고요 . 나도 친정엄마가 안 계시니까 엄마라고 생각 해요 .”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짧지 않은 그녀들의 사연을 들었지만 이번에 들여다 본 삶의 풍경은 그녀들의 지나온 삶에 있지 않았다 .
오랜 세월을 보내고 한적한 길가 팽나무 그늘 아래서 지나온 삶과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녀들에게서 나는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 어쩌면 여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위계와 유용함의 경계를 넘어서는 그런 연대의식이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
할머니는 십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말해 주었고 김씨 아주머니는 할머니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고 그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관계인지를 말해 주었다 . “ 이 친구가 딸 같고 며느리 같아 . 옛날에는 여자가 모정에 앉아있지도 못했는데 늙었는데 뭐 어쩌 .
모정 한 구석에 앉아있어도 되겠지 뭐 . 이제는 . 내가 이 친구한테 먼저 여기 나와서 앉아있자고 했지 . 여기 앉아있으면 좋아 . 좋은 사람들도 많이 지나가고 , 어떤 사람은 커피도 가져다주고 음료수도 갖다 주고 그래 . 예전부터 모정은 할아버지 차지였는데 .
우리가 딱 둘이 앉아 있으면 아무도 못 와 . 여기는 우리 구역이야 .” 2016년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맞잡은 두 손이 따뜻하다. 2016 년 6 월부터 만나기 시작한 둘의 관계 .
요양보호사 김씨는 오전 9 시에 할머니 댁에 방문해서 아침연속극을 함께 보고 10 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곳 팽나무 모정으로 향한다 .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매일 보면서도 할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 할머니는 모정에 앉아 김씨 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꼭 소설 같다고 하신다 .
이렇게 남남이 만나서 서로 마음에 두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이 , 그게 소설 아니겠냐고 . “ 우리 사는게 남남끼리 만나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 그 와중에 좋은 사람도 만나고 안 좋은 사람도 만나고 . 그런거 보면 참 재미있는거 같아요 . 살만한 거 같아요 .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이 더 많으니까 . 아무리 세상이 흉흉하다고 해도 살만한 거 같아요 . 만약에 우리 엄마가 옛날 사람이라고 옛날 사고방식으로 나를 대했으면 나도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근데 엄마는 세대를 앞서가는 분이어서 대화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
아직까지도 기억력 짱짱하시고 네비도 알고 카톡도 알고 다 알아요 .” 어쩌다 우연히 들어선 이 길에서 나는 팽나무 아래에서 오랜 동안 우정과 연대를 나누고 있는 두 분의 삶의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 이 길이 나에게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이다 .
두 분의 이야기가 서둘러 끝을 맺지 않고 좀 더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 지나가던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 할머니는 여기 팽나무 아래가 너무 좋아서 매일 같이 여기를 나오고 건강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대답해 드린다 . 그리고 할아버지가 다시 덕담을 건넨다 . “ 그래요 .
그 팽나무가 할머니 병을 낫게 해 드릴 거에요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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