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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6.01.13

어느날 까짓거, 우리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시잡소'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6.01.13 14:51 조회 1,79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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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잡소를 펴낸 고산고등학교 소녀들이 고산미소시장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심소희, 임예빈, 문은혜, 권오영, 전주에서 놀러온 친구 조혜민양. 어느날 까짓거, 우리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늙수그레한 30대 여선생과 천방지축 소녀 4명이서 시간을 잡는 소녀 .

줄여서 ‘ 시잡소 ’ 라고 부르기로 하자 . 왠지 입에 착착 감기고 당찬 느낌이어서 마음에 드는 줄임말이다 . 이쯤 되면 시잡소가 무엇인지 무지 궁금할 거라 지레 짐작해 본다 . 시잡소는 고산고등학교에 다니는 네 명의 소녀들이 뭉쳐서 만든 잡지의 제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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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대한 설명은 뒤이어 소녀들의 언어로 직접 전하기로 하고 , 먼저 소녀들과 나의 질긴 인연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 소녀들과 몇 년 동안 함께 놀던 가락이 없었더라면 이 잡지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 소녀들아 . 나랑 놀자 소녀들을 처음 만난 건 2012 년 .

15 살 고산중학교 2 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 청소년 직업체험프로그램에서 강사와 학생으로 만났다 . 완주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청소년들이 직접 인터뷰해보고 기사를 쓰고 책자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

보통 프로그램이 끝나면 강사와 학생들은 ‘ 작별 ’ 하기 마련인데 이 친구들과는 계속 만날 일이 생겼다 . 나에게 나이 어리고 당돌한 친구들이 생기고 , 소녀들에겐 늙스구레한 친구 하나가 생긴 셈이다 .

해를 넘기고 2013 년 고산미소 시장에 ‘ 널리널리 홍홍 ’ 이라는 작은 점포를 시작했고 갈 곳 없던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가게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 벌써 3 년이 흘렀다 . 소녀들과 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쑥스러워 동네주민 이정은 ( 연두엄마 ) 씨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

홍홍은 너희들에게 무엇이 길래 왜 자꾸 오냐는 질문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말았다 . 연말 드라마 시상식에서나 나올 법한 감동적인 말들이 터져 나왔고 나는 눈물을 쥐어짜는 과도한 연기로 오글거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 하지만 소녀들의 말은 참으로 예뻤다 .

“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전학을 많이 다녀서 모르는 사람한테는 인사를 안했거든요 .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제가 친화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 홍홍 샘 주변 분들을 알게 되고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 거 같아요 .” “ 학교에서는 성적에 치이고 선생님 , 친구관계에 치이고 .

여러 문제 때문에 학교가 편하지 않았어요 . 친구와도 힘든 것들을 나누지만 서로가 힘든걸 아니까 편히 이야기 하지 못했죠 . 여기 와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느낌 . 그래서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꼈죠 . 나에게 좋은 곳이에요 .” “ 추억 . 애들이랑 추억 쌓은 게 많아요 .

아 ~~~~~~~~~~~~~ 근데 너무 오글거려요 .” “ 나한테 홍홍이란 학교 끝나고 오는 곳 .

여기 없었으면 저희 오갈 데도 없고 매일 차 시간 안 되면 벌벌 떨면서 기다렸을 테고 , 그리고 여기 오면 먹을 게 많거든요 .” 그래서 가게 한 쪽에는 본격적으로 어른들의 주머니를 털고자 (?) 후원함이 마련되어 있다 .

주머니에 잔돈들이 생기면 후원함에 털어 놓고 가시는 고마운 주민들 덕에 , 먹성 좋은 나의 어린 친구들은 나날이 키도 크고 살도 포동포동 오르고 있다 . 자 . 이제 들려줘 너희들의 이야기를 고등학교 진학으로 4 명의 친구들은 다른 지역으로 진학을 하고 남은 네 명이 고정 멤버가 된 거다 .

권오영 , 문은혜 , 심소희 , 임은혜 . 이 들이 시잡소를 만든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팀이다 . 2015 년 10 월부터 시작해 기획회의 , 아이템 선정 , 필름카메라로 사진촬영 , 인터뷰 , 기사작성 , 삽화그림 ,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편집까지 . 전 과정을 스스로 소화하는 프로젝트였다 .

소녀들의 손과 발과 머리와 마음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바삐 움직였다 . 해가 지나고 1 월 . 방학은 했지만 잡지는 발간되어야 하기에 편집 작업에 한창인 소녀들과 엄청난 간식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 자 . 묻겠다 . 시잡소가 도대체 무슨 뜻인가 .

“ 처음에 생각한 제목은 시간을 잡는 잡지였는데 .. 저희가 소녀 잖아요 . 그래서 소녀로 바꿨죠 . 기획회의를 할 때 많은 아이템들이 나왔는데 그게 대부분 현재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자는 컨셉 .

현재의 우리들이 빨리 흐르는 시간을 잡고 과거를 들여다본다는 그런 느낌이랄 까요 .” 농촌에는 세대 간의 격차가 큰 법 . 청소년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대화가 점점 줄어들며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

소녀들은 그 원인을 언어라고 생각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조사한다 . 즉 , 은어사용설명서 . 요즘 아이들이 쓰는 알 수 없는 줄임말을 신중하게 듣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다 . 거의 외계어 수준이므로 . 그래서 자신들이 무심하게 쓰던 은어들을 수집하고 어른들이 이해하기 좋게 설명해주는 작업을 했다 .

또한 그들 자신도 때론 어른들의 말들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 그래서 함께 사는 할머니가 자주 사용하시는 사투리를 중심으로 어른들의 언어도 조사해서 이해하기 좋게 풀어 썼다 .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사진을 찍던 소녀들은 과감하게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

“ 필름카메라 들고 고산읍내 돌아다닌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 무심히 지나치던 곳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선했어요 . 셀카는 찍고 안 예쁘면 바로 지우는데 .

필름카메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찍을 때 신중하게 찍게 되는 것 같아요 .” 잡지 2 호도 만들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손사레를 치다가 그래도 이렇게까지 한게 아까워서라도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 시잡소 1 호는 1 월 중순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 . 소녀들의 잡지다 .

한 권에 2,000 원 . 완판 되어야만 2 호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널리널리 홍홍에서 판매할 계획이니 언제든 찾아오시라 . 소녀들과 완판의 김칫국을 마시며 잡지 2 호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100 분토론 분위기로 흘러가서 소녀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 , 교육현실 , 자연스럽게 청년들의 실업문제로 이어졌다 . 소녀들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 만큼 다양한 꿈을 꾸고 싶어 했지만 , 그들 스스로가 무섭게 알고 있었다 .

현실은 꿈을 꿀 만큼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 소녀들이 한 말이 오래도록 떠올랐다 , 잠겼다를 반복한다 . 아마 내 마음 속의 소녀가 동 하였기 때문일 수도 . “ 진로가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가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꼭 진로여야 하는 건가 . 우리한테 있는 뇌는 그냥 있는 건 아니잖아 .

가치관이나 다양성 .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크게 만드는 것 . 문제집 푸는 공부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짜 공부 . 그런 것들을 지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

다양성을 존중해주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 그런 세계였으면 좋겠어요 .” * 시간을 잡는 소녀 소개 완주진로교육센터의 지원과 미디어공동체완두콩의 후원으로 고산고등학교 1 학년 친구들이 만든 잡지 .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든 300 부 한정판 .

현장 사진

어느날 까짓거, 우리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시잡소'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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