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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7.04.03

양심을 지키는 백색의 할아버지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7.04.03 16:36 조회 1,8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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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지키는 백색의 할아버지 운주 완창마을의 강희목 어르신 운주 대둔산 아랫마을에는 백색의 간달프가 살고 있다 . 옷과 신발 , 양말 , 머리카락 , 수염 . 온통 흰색이어서 눈이 부신 강희목 (94 세 )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 간달프 ’ 가 생각났다 .

그래서 내 마음대로 간달프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지었다 . 영화 ‘ 반지의 제왕 ’ 팬이라면 간달프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 악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고 평화를 되찾기 위해 반지원정대가 꾸려지게 된다 . 이들의 긴 여정을 안내하는 조력자이자 마법사가 바로 간달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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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원정대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큰 도움을 주지만 결국 목숨을 잃는다 . 곧 큰 전투가 벌어지고 반지원정대는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 그때 협곡 너머에서 광채와 함께 부활한 백색의 간달프가 나타난다 . 반지의 제왕 3 편의 시리즈 중에서 나는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

강희목 할아버지와 간달프는 백색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 강희목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 고산고 소녀들과 함께 만든 ‘ 시간을 잡는 소녀 ( 이하 시잡소 )’ 잡지 취재를 위해 특이한 복장을 입고 다니는 어르신을 수소문 했다 .

운주완장마을 최현주 사무장님의 제보로 어렵게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 푸른 대나무밭 아래 소담한 집 . 그곳에서 백색의 강희목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 잡지 지면 관계로 하얀 복장에 대한 짧은 글과 사진이 실렸지만 할아버지 구술 녹취한 것을 풀어낸 것만 해도 A4 용지 20 장 분량이다 .

우리는 할아버지의 인생철학들을 풀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고 , 때가 되면 완두콩에 자세히 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고로 이 인터뷰는 시잡소 친구들과 공동 작업한 것이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갔다 . 할아버지 집은 잠을 자는 본채와 공부하는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공부를 하고 함께 공부하는 제자들이 수시로 찾아온다 . 젊은 시절 지향한 뜻이 있어 1957 년부터 시작한 공부다 . 인륜을 바로 세우는 대동명륜회 활동과 태교생활운동 , 양심회복운동 , 흰옷입기 운동 .

별개의 활동으로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할아버지 평생의 인생철학이 되었다 . 60 년 동안 할아버지의 작은 집에는 전국의 철학자 , 민족학자 , 종교인 , 예술인 , 젊은이들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 무작정 찾아간 날이 장날이었는지 별채 신발장에는 신발이 그득했다 .

엄청난 기운에 망설이며 별채 문을 열었는데 순간 하얀 광채에 압도되었다 . 하얀 옷을 입은 33 인이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그날이 음력으로 3.1 이었다 . 민족해방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의 민족종교인들과 도인들이 모인 것이다 .

음력 3.1절을 기념하여 흰옷입기운동본부 사람들과 함께 흰 옷은 우리 민족이 즐겨 입던 옷 범상치 않았다 . 작년에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흰 옷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백바지에 백구두 신은 멋쟁이 노신사를 떠올릴 정도로 단편적이었다 .

왜 흰 옷만 입으시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으로 우린 이 인터뷰가 길어질 것을 직감했다 . “ 우리나라를 백의민족이라고 하잖아 . 흰옷 입은 사람 . 우리는 원래 흰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야 . 그래서 천손민족이라고도 하고 .

즉 하느님의 자손 , 귀한 민족이라는 말이야 , 일정 전까지만 해도 다 흰옷을 입었어 . 근디 일본 사람들이 와가지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흰 옷을 못 입게 한 거지 .

큰 붓에 먹물칠해 가지고 등허리에다가 직직 그셨싼게 입고 댕길 수가 없게 된 거지 ” 어둠의 시대는 가고 밝은 시대가 온다는 강할아버지의 말씀과 백색의 33 인 속에 앉아있던 몇 시간이 낯설기는 했지만 하얀색이 주는 편안함에 묘하게 나른해지기도 했다 .

흰 옷은 우리 민족이 즐겨 입던 옷이고 ,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뿌리다 . 흰 옷을 입고 바른 마음으로 잃어버린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철학이다 .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에게 조력자가 되고 , 이런 할아버지의 조력자는 부인 이정희 (92 세 ) 할머니다 .

운주면 금당리 천등산 아랫동네에서 태어나서 열아홉에 두 살 아래 소녀와 혼인을 하고 칠남매를 낳고 키우셨다 . 몇 해 전에는 결혼 70 주년을 기념하여 할아버지가 할머니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 . 찾아오는 손님들 밥해먹이느라 평생 고생한 할머니의 노고를 할아버지는 잘 알고 있다.

“ 한 치도 소홀함이 없이 여자의 도리를 실천하심은 이 세상 여성 중의 여성으로 사료됨을 인증하고 존중합니다 . 본인인 강희목이가 여기까지 옴은 선녀이신 이정희 당신의 노고와 성현지심이 아니고는 현재까지 올 수가 없었습니다 .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할머니도 할아버지 따라 흰 옷을 입는다 .

입어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좋다고 하신다 . 요즘 젊은이들이 입는 커플룩의 진수다 . 강할아버지의 추천으로 선발된 운주면의 효자효부데 대한 책. 할아버지 서재에 가면 오래된 서적들이 그득하다 양심이 바로 서는 것에 대하여 산수유나무 아래 앉아 나의 우문과 할아버지의 현답이 오가는 봄날의 호사를 누렸다 .

내가 생각하기에 할아버지의 철학과 깨달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 양심 ’ 인 것 같다 . “ 과거는 양반세대 , 현재는 물질세대 , 앞으로는 양심세대가 올 것이다 .

현재는 양반을 대우 안 해주듯이 후천에 가면 현재 권세가 , 돈 가진 자 , 비양심가와 이기주의자는 사람대우 못 받고 사람 축으로 인정도 못 받을 것이다 . 온 국민이 그것을 원하면 그 세대로 변하는 거야 . 현 세대를 보면 비양심적인 대통령을 국민은 원하지 않아 .

양심에 양자가 두 양 兩 자인 사람이 많아 . 마음이 두 개인 사람 . 여기서는 이 말하고 밖에 가면 딴 말하고 . 이제부터라도 어질 양 良 자를 써야해 . 양심은 자기가 말을 하면 그대로 지키는 것이 양심이야 . 진짜 良心 이 있어야 해 .

온 국민이 양심가를 원하기 때문에 앞으로 양심시대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 우문현답 중 하나 . 나 : 할아버지 . 그런데 새 세상이 오긴 왔나요 ? 강 할아버지 : 아믄 . 이제 새 세상이 왔지 .

천심 ( 天心 ), 본심 ( 本心 ), 진심 ( 眞心 ), 정심 ( 正心 ), 효심 ( 孝心 ), 그리고 양심 ( 良心 ) 을 마음에 품고 살면 언제든 새 세상이 오는 거지 . 간단하지만 강력한 할아버지의 말들 . 대둔산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내내 맴도는 말들이다 .

때 탄다고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하얀색 스웨터를 벚꽃피기 전에 입어봐야겠다 . /글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사진 권오영(시간을 잡는 소녀)

현장 사진

양심을 지키는 백색의 할아버지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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