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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9.10.15

시계수리공의 41년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9.10.15 11:30 조회 1,46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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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수리공의 41 년 고산면 중앙사 구근회씨 터미널 맞은편 , 8 평 남짓한 이 가게에서 반나절 앉아 있다 보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 버스와 온갖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오고 간다 . 문이 열리면 땡그랑 종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들어옴을 알린다 .

편안하게 낡은 옷을 입은 어르신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 금빛 손목시계다 . 언제부터 흐르기 시작한 시계였을까 . 주인장과 손님은 얼마나 오래된 관계일까 . 주인장은 시계를 받아들고 오래된 의자에 앉아 오래전에 배운 기술로 지금의 시계를 고친다 .

시계 수리중인 구근회씨 (2)
시계 수리중인 구근회씨 (2)

멈춘 시계가 되살아 날 동안 시계주인 어르신은 나에게 이 가게를 소개한다 . “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가고 시계가 아프면 여기로 와야지 . 여기가 시계병원이야 .” 중앙사는 고산읍내의 유일한 곳이다 . 금 , 은을 비롯한 보석과 시계를 판매하면서 각종 시계를 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

몇 해 전부터는 소일거리로 도장 파는 일까지 겸하고 있다 . 중앙사의 주인 구근회씨 (71 세 ) 는 41 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 예전에는 이런 가게가 두세 곳 있었지만 지금은 중앙사 한 곳만 남아 있다 .

1978 년 고산읍내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맞춘 작업대 , 의자 , 여러 가지 작업도구들 모두 41 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 “ 내 고향은 원화정마을이야 . 19 살에 서울로 올라갔지 . 누나들이 내 인생의 길잡이를 많이 해 줬어 .

여기 있으면 똥지게밖에 더 들겠냐 , 뭐든 기술을 배우라고 인생을 이끌어 줬지 . 올라가서 주로 몸 쓰는 일을 많이 했지 . 전기 다루는 기술도 배우고 , 목수일도 하다가 떨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 명동에 있는 코스모스 백화점 짓는 곳에서 일하다가 전기 감전 돼서 , 같이 일한 동료 여럿 죽었어 .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성모병원에서 2 개월 동안 입원해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지 .” 위험한 일을 겪고 나니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가 겁이 났다 . 혼란스런 스무 해의 어느 날 , 터벅터벅 걷다가 불빛 밝은 종로 어느 길가에서 걸음이 멈췄다고 한다 .

훤한 불빛 아래서 깨끗한 옷을 입고 금세공 하는 기술자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했다 . 귀금속 관련된 곳에서 대체적으로 시계를 취급하기도 했고 60~70 년대는 시계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 80 년대 들어서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시계 수리업도 황금기를 맞았다 .

구근회씨는 방황하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계 학원으로 향했다 . 중앙사 구근회씨의 오래된 금 가공 장비들. “72 년도 이리 ( 익산 ) 로 내려와서 시계학원을 다녔지 . 그 당시는 시계공이 유망직종이었어요 .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배운 거지 .

학원비를 대야 하는데 누님들이 도움을 많이 주신거지 . 우리 자식들에게도 많이 이야기해 . 고모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먹고 사는 거라고 . 학원에서 먹고 자며 하며 2~3 년 기술 배웠지 . 시계를 수없이 뜯었다 조립했다를 반복하며 기술을 연마했지 . 시계가 귀한 시절이었지 .

그 당시에 고급기술이었지요 .” 그 당시 시계학원 근처에서 금 가공하는 어르신에게 고급기술을 전수 받기도 했다 . “75 살 드신 할아버지였어 . 일제시대 때부터 금은 장사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금 가공하고 분석하는 것은 아무나 안 알려 줬거든 .

내가 옆에서 허드렛일 많이 도와드렸더니 나를 예쁘게 본 거 같아 . 그래서 기술을 전수 해주신 거지 . 그 당시 내 나이 24 살 . 1 년 정도 남의 집에서 직원 하다가 내 가게 했지 .” 75 살 할아버지는 풋풋하던 구근회씨에게 평생 먹고 살 기술을 알려 주셨다 .

원석에 박혀 있는 금을 채취하기 위해 망치로 두드려 잘게 부스고 물에 걸러내면 참깨만한 크기의 금 알갱이들을 얻을 수 있다 . 그 알갱이의 불순물 ( 은 , 구리 등 ) 을 제거하고 순수한 순금을 얻기 위해 초산분석 , 왕수분석 작업을 해야 한다 .

초산 , 염산 등 화학약품을 다뤄야 하고 약품들의 비율을 맞춰야 하는 정밀한 작업이다 . 구근회씨는 그 당시 금 가공하던 작업설비들을 보여주셨다 .

분석 작업할 때 연기 빠져나가는 굴뚝의 흔적 , 금을 녹여서 붓는 거푸집 , 섬세하게 다듬는 끌 , 운주 금당리 금광 ( 현재는 폐광 ) 에서 채취한 금이 박힌 원석 .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금 가공하고 세공하는 일은 줄이고 있지만 방금 전까지 해오시던 일처럼 모든 설명이 생생하다 .

“ 그 당시에 시계방이랑 금은방 혼자서 다 같이 하는 사람 드물었어요 . 금을 가공하는 가게로는 최초였지 . 나는 집에서 작업할 수 있거든 . 서울 같은 곳은 모든 작업이 분야별로 분업화 되었잖아요 . 근데 우리처럼 작은 가게가 이문 남기려면 완제품을 만들어 내야만 하잖아 .

그래서 모든 분야를 내가 다 할 수 있죠 .” 고산면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잘 나가던 시기는 비슷할 것이다 . 고산뿐이겠는가 . 70 년대부터 ‘ 잘 살아보세 ’ 를 외치며 밤낮없이 일하고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갔다 . 장사도 잘 되던 시기였다 . 80 년대 초에서 IMF 가 오기 전까지 .

그 당시에는 별 실감을 못 느꼈는데 차츰차츰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 “ 그 당시는 반지나 목걸이 차고 다니면 창피하던 시절이었어요 . 나라가 빚이 많아서 국민이 금모우기 운동에 동참했었잖아요 . 한창 바쁠 때는 낮에 망치질 하면서 금 작업하고 저녁에는 시계수리 작업하고 그랬지 .

예전만 못해도 계속 찾아주는 손님이 있으니까 나도 아직 몸 건강하니까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 중앙사 가게정문이 아스라이 비추는 벽시계.(고산고 송윤성 제공) 구근회씨의 중앙사는 41 년의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 이곳을 찾는 손님들 또한 40 년 지기 단골들이다 .

서로 욕심을 버려야 신뢰가 쌓이고 관계가 지속되는 법이다 . 손목에 태엽시계 차고 자랑스러워하던 시절이 지나고 전자시계가 등장했다 . 저렴한 시계들이 넘쳐나면서 고쳐서 쓰는 사람들이 드물어진다 . 2~3 년 쓰면 오래 쓰는 거라고 하니 거의 일회용물건 아닌가 .

이런 시대에 여전히 오래된 시계를 가지고 찾아오는 이가 있고 , 그것을 기꺼이 수리하는 시계수리공의 모습은 고전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스럽다 . 지나치게 빨리 달려왔고 많은 것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 지금보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

서랍을 뒤져 고장 난 시계 하나를 찾아냈다 . 중앙사의 종소리를 울려야겠다 . * 본 인터뷰는 고산고등학교 LTI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2 학년 송영웅 , 송윤성 , 류상화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시계수리공의 41년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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