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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5.12.16

스물여덟 농부 '임꺽정' 최한욱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5.12.16 11:42 조회 1,78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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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장필순 전도연에게 밥주던 이 남자 제주도 떠나 왜 하필 완주서 농사짓는대? 제주도서 유명한 식당집 아들 일에 치인 아픈 부모님께 "우리, 시골가서 농사짓고 삽시다" 큰 덩치덕에 별명은 '임꺽정' 좀 무서운 외모는 꽃바지-모자로 사알~짝 눌러주는 센스쟁이!

경천면 신덕마을에 살고 있는 28 살 청년을 만났다 . 그것도 청년 농부 . 게다가 예쁘장하고 호리호리한 요즘의 젊은이가 아니라 그야말로 호랑이도 때려잡을 만한 풍채를 지닌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다 . 서론부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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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풍경 ’ 을 2013 년부터 완두콩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니 글을 쓰는 것도 이제 3 년이 되어 간다 . 매달 정해진 날까지 글을 써야하는 만만치 않은 압박감이 있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들려준 굴곡 깊은 이야기들은 나의 삶 또한 풍부하게 해주었다 .

완주 곳곳의 오래된 곳 , 그 곳에서 묵묵히 일한 이들을 만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연륜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됐고 만난 분들 평균 연령이 70 대였다 . 그런데 이례적으로 평균연령을 확 내려준 20 대 젊은이가 나타난 것 이다 . 이 젊은이를 처음 만난 건 2014 년 ‘ 나는 난로다 ’ 행사 때였다 .

내 기억 속에 그는 땔감용 통나무를 곤봉 들 듯 가볍게 들고 다니며 행사장을 누볐던 것 같다 . 마치 임꺽정 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보는 눈은 비슷한가 보다 . 완주에 와서 형님들이 지어준 별명이 ‘ 임꺽정 ’ 이란다 . 별명은 임꺽정 . 이름은 최한욱 (28 세 ).

길 위에서 마음껏 놀고 몸으로 일하고 경계를 넘나들던 임꺽정의 삶처럼 그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 2015년 나는 난로다 행사에 스탭으로 참여한 최한욱 씨. 이때도 역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꽃바지를 입고 있다. 서울에서 평택을 지나 제주도 . 그리고 완주에서 정착하다 .

몇 년 사이 귀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 교육복지를 위해 도시로 이주 하려는 욕망들이 있을 것이다 . 최한욱씨의 부모님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 “ 저희 부모님에게는 도시가 좋은 곳이 아니라 시골이 좋은 곳이었던 거죠 .

제 위해 형이 있는데 저희가 때 어나기 전부터 애들은 시골에서 키워야지 마음 먹으셨데요 . 시골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으셨던 거죠 . 그래 서 서울에서 평택 진위면 시골 마을로 이사를 했어요 . 어린 시절 추억이 많은 곳이죠 .

그러다가 아버지 일 때문에 초등학교 5 학년 때 제주도 애월읍으로 이주하게 됐어요 .” 제주도에서 초 , 중 , 고 , 대학교 까지 보낸 그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 그 전에는 부모님의 의지로 이주를 했 다면 3 년 전 , 완주로의 이주는 전적으로 그의 의지였다고 한다 .

완주로 오기위한계기를 만들어준 제주도 애월읍에선 어떤 경험들을 했을까 .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꽃바지와 보라색 모자. 무섭게 생겨서 이런 귀여운 아이템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는게 기분좋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놀아볼 것 다 놀아본 남자 2003 년 그의 부모님은 제주도 애월읍 해안도로가에서 식당을 시작하셨다 . ‘ 그 집 ’ 이라는 간판을 달고 문어 두루치기와 황태구이 , 황태탕 , 메생이 탕 등을 주력 메뉴로 하는 밥집이었다 . 9 년 동안 운영을 했는데 입소 문으로 꽤 유명했다고 한다 .

맛집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번 나왔고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그 당시 사진들이 많이 남아있다 . “ 저 고등하교 다닐 때 엄청 바쁠 때는 학교로 전화가 와요 . 한욱이 좀 보내달라고 . 장사 잘 됐지요 .

그 당시 저희 식당 단골이 가수 장필순이었고 그 분이 이효리씨도 데리고 와서 먹고 가고 배우 전도연씨도 먹고 갔 지요 . 재밌는 일도 많았지만 참 힘들었어요 .7 시부터 10 시까지 쉬는 날 없이 일했죠 . 장사도 참 잘 됐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 사람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

너무 힘들고 짜증나서 그냥 가만히 있는데 막 눈물 이 나기도 하고 그랬죠 . 별의 별 인간들이 많다는 걸 그때 알았죠 ” 엄니 , 아부지 시골 가서 농사짓고 삽시다 잘 되는 장사를 접고 떠나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불현 듯 완주로 온 이유를 물었다 .

“ 어머니가 장사하신다고 고생을 많이 하셔서 협심증이 왔어요 .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더라구요 . 근데 때 마침 그때 경기가 너무 안 좋았어요 .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제가 제안을 했죠 . 우리 시골 가서 농사짓자고 ” 최한욱씨의 뜬금없는 제안으로 가족 대이동이 일어난 거다 .

장사하면서 주식공부도 하고 이런 저런 공부도 해봤는데 앞으로 농업이 희망적 일거라는 생각을 했단다 . “ 농사가 망하면 그 나라가 망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지금은 좀 힘들지만 앞으로는 나아 질거에요 .

이곳 저 곳 알아보다가 완주에는 로컬푸드라는 것도 있고 생산하면 직접 판매할 판로도 있고 ..” 그 사이 훌쩍 큰 최한욱씨는 2012 년 부모님을 이끌고 바다 건너 완주로 오게 된다 . 제주도에서 평생마실 술 원 없이 마셨고 밤새도록 놀아보기도 해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

 최한욱씨가 재배한 아마란스 말린 것과 찰수수 로컬푸드에 욱이네 아마란스. 욱이네 찰수수로 납품하고 있다. 젊은 몸뚱이가 있으니 못할게 어디 있겠어요 . 완주 구이에서 비봉을 거쳐 현재는 경천 신덕마을 ,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는 집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는 그 .

현재 아마란스 천 평 , 찰수수 이천 평 농사를 짓고 있고 내년에는 오천 평으로 넓힐 계획이 있다 . 최종 목표는 만 평이란다 . 농사만으로 벌어먹고 살려면 크게 농사를 지어야 남는 게 있다는 걸 지난 3 년 동안 깨 달은 바라고 한다 .

대농으로 가려면 기계설비 , 저온창고 등 투자해야 할 것도 만만치 않다 . “ 처음 이주해서는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어요 . 그러니까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요 . 밧데리 공 장 , 타이어 휠 공장 , 일용직 노동자 , 비닐하우스 업체 , 여름에는 웨이터도 했었어요 . 노래주점에서 .

제 생김 새 때문에 손님들이 좀 무서워하긴 했는데 사장님은 좋아 하시더라 구요 . 안 해 본 일 없어요 . 근데 젊잖아 요 . 몸뚱이 굴려서 못하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 사람한테 스트레스 받는 건 가슴에 오래 남는데 몸이 힘든 건 자고 나면 다 괜찮아져요 .

그래서 전 지금이 좋아요 .”  최한욱씨의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꽃 바지. 일복으로 늘 입고 있다. 여름 겨울용으로 4벌이 있다고 한다. 너무 자주 입어서 여기저기 헤져있다 어머니 이정옥씨와 함께. 오랜만에 젊은 청년과 대화를 나누니 나 역시 젊어진 기분이다 .

어르신들을 만나면 어르신대로 참 좋다 . 구 구절절 고생한 이야기 , 모험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 최한욱 청년 농부를 보면 기대심이 생긴다 . 이 청년 이 완주에서 어떤 일들과 만나게 될까 .

그래서 이 청년이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동네 꼬마들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이야기 하게 될까 . 그런 모습을 자꾸 기대하게 된다 .

현장 사진

스물여덟 농부 '임꺽정' 최한욱 사진 1

첨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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